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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A > 지구촌 > 한필원교수가 보는 영화는..


 

 

 

일상의 중심에 놓을 것은 무엇인가?

 

 

한필원 / 2004년 2월 5일

 

 

 

 

 버팔로에 온 지 여섯 달이 지나서 처음 영화관에 갔다. 며칠 전부터, 오늘 오전 11시 반에 시내의 마켓 아케이드 극장(Market Arcade Theaters)에서 루이스 칸(Louis Kahn)에 대한 영화를 한다는 벽보가 내가 있는 헤이스 홀(Hayes Hall; 건축대학 건물) 곳곳에 붙어있었다. 나는 다음 주에 여기서 가까운 로체스터(Rochester)에 있는 칸의 초기 작품, '유니테리언(Unitarian) 교회'를 답사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다.

  예상대로 영화관은 한산했다. 로비에서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의 대부분은 건축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수업의 일환으로 동원한(?) 뉴욕주립대학의 건축과 학생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옆 자리에는 하따 교수가 앉았는데 그는 2 년 만에 처음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건축가(My Architect)’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아들의 여정(A Son's Journey)'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루이스 칸의 숨겨진 아들 나타니엘(Nathaniel)이 오래 전 죽은 자신의 아버지의 종적을 찾아 나선 여정을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칸의 여자들과 친척들은 물론 프랭크 게리, 아이 엠 뻬이, 필립 존슨, 에드먼드 베이컨 등 칸이 생전에 교류했던 지인들을 만나고 인도와 방글라데시까지 찾아서 칸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가 칸의 사촌을 만날 때 출생증명서를 가지고 간 장면이 인상깊다. 칸의 장례식에 갔었으나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아들도 장례식에 참석했지만)을 모르는 그 친척에게  자신이 칸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슬픈 이야기이다.

  2003년 제작된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널리 인정받는 그의 작품과는 달리 비밀에 쌓여 있었던 칸의 사생활을 들추는 개인사적인 다큐멘터리이어서 그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벽돌에게 불어보라, 그것이 무엇이 되길 원하는지......’, ‘그는 유대인으로서, 건축에서 하느님을 향한 종교적 정신성을 추구하였다’든지 하는 다 아는 이야기보다 ‘솔크(Salk) 생물학연구소’에서만 적자를 면하였고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손해를 보았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로웠다. 나는 비로소 건축가, 고객(거주자), 사무소 경리 모두가 다 만족하는 훌륭한 건축이 실제로 가능함으로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에 후보로 오르는 등 영화 자체로도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나타니엘이 11살 때인 1974년, 인도에서 돌아오던 루이스 칸이 맨해튼의 펜실베니아 역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객사했다는 신문보도로 시작한다. 아무도 그를 몰라보고 그의 소지품에는 연락처조차 없어서 3일간이나 시신의 유족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내가 대학 2학년 때 건축사 수업시간에 들었지만 그 다음의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이야기들이다.

  그가 죽었을 때 뉴욕타임즈의 부고란에는 유족으로 아내와 딸이 있다고 했지만, 실은 루이스 칸에게는 두 여인이 더 있었고 그들에게는 또 각각 딸과 아들이 있었다. 어린시절의 화상으로 얼굴은 쭈글쭈글 엉망이고, 머리는 숯이 적어 대머리를 겨우 감출 정도이며, 목소리 또한 나쁘고, 손은 목탄으로 늘 시커멓고, 빚에 시달린 이 이상주의 건축가에게 이런 여성 편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못 놀라왔다.

  영화가 끝난 후 나는 영화를 같이 본 이안(Ian) 교수와 하따 교수에게, “우리가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의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훌륭한 건축가도 되지 못하고 가족들만 희생시키면 어떻하지?’라고 물을까 하다가 그렇게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잠시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그들과 헤어진 뒤에도 그 질문의 잿더미는 한 동안 꺼지지 않았다.

  ‘개인의 생활과 전문분야에서의 성취는 제로섬 게임 같은 것일까?’, ‘나는 그 중 어느 하나를 중심에 놓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둘을 모두 절제함으로써 중용의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인가?’, ‘두 가지를 다 갖는 것은 두 마리의 토끼를 좇는 것처럼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 이전에, ‘세 가족을 이루고 어느 한 곳에도 충실하지 못했으며 말년에는 6억원의 빚을 지고 파산을 한 루이스 칸의 인생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를 한 방글라데시 건축가의 말대로, 심오한 건축세계를 펼친 그의 공적은 그 모든 사적인 과오를 덮을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누구나 삶 속에서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놓이곤 한다. 가정과 직장, 현재와 미래, 돈과 양심...... 그래서, 그저 최선이라는 구호를 내세우기 전에 자신의 삶의 노선을 결정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인가? 시간이 좀 흘러도 시원한 답은 얻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삶의 단계 별로 노선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지금 나의 나이, 나의 단계에서 내 일상의 중심에 놓을 것은 무엇인가?’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무래도 비디오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이 영화의 자료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www.myarchitectfil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