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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A > 영화 > 촬영장소의 중요성


촬영장소(Location)의 중요성 - '취화선'의 경우

 

깐느 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취화선'을 보기가 두려웠다. 유명한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았으니 예술성이 높은 영화임에는 틀림없을 이 영화를 내가 마음놓고 보지 못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래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뒤늦게 취화선을 비디오로 보았다. 나는 무슨 숨은 그림을 찾으려는 듯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비디오를 보았다. 아산 외암마을의 건재고택은 매우 비중있게 영화의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외면하려는 눈에는 더 잘 띄는 법인가? 내 눈에는 건재고택의 집과 조경이 영화의 전반부를 압도하고 있었다. 어느 장면에서는 건재고택의 소나무가 화면을 꽉채우기도 하였다.

2001년 8월 10일 오전, 나는 외암리 민속마을을 들어가다가 임권택 감독과 영화배우 최민식을 보았다. 그날 내가 그 유명한 분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마침 그 마을의 '건재고택(建齋古宅)'이라는 한옥에서 '취화선'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재고택은 건재 이상익(1848∼1897)이 고종 6년(1869)에 지었다고 하는데, 건재가 전라도 영암군수를 지낸 연유로 영암댁(靈岩宅)이라고도 불린다. 너른 바깥마당에 격식을 갖춘 솟을대문간을 갖추고 있는 이 집을 밖에서 보면 누구나 그것이 전형적인 조선시대 상류주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 이 집은 중요민속자료 233호로 지정된 국가지정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이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집 앞에서, '좋은 한옥이 한 채 있구나!' 하면서 아쉬운 발길을 돌리곤 한다.

다 아는 것처럼, 취화선은 조선 후기의 화가 오원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의 삶과 예술혼을 그린 영화이다. 건재는 장승업과 비슷한 시기를 살다가 같은 해에 죽었으니 건재의 옛 집에서 취화선을 찍은 것은 어찌 보면 탁월한 헌팅(장소 물색)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집으로 들어가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옥의 조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건재고택의 조경이 우리의 전통과 동떨어져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 건축에서는 건물 앞을 조경으로 가득 채우지 않는다. 대개는 그냥 깨끗이 비워둔다. 대신에 집의 뒤쪽이나 주변을 화단으로 꾸미며, 본격적인 정원은 별도로 조성한다. 그런데, 건재고택 사랑채의 앞마당은 소나무·은행나무·감나무 등의 수목과 정자, 석물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일본식 조경이다.

임권택 감독과 배우 최민식을 본 날부터 나는 의아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왜 하필이면 일본식 조경으로 가득찬 그곳을 촬영장소로 택했을까? 언제 기회가 되면 영화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건재고택을 취화선의 로케로 선정한 데는 어떠한 깊은 예술적 의도가 숨어있는가? 행여나 촬영장소에 대한 무심함 혹은 무지 때문이 아니길 바라며......

사진출처; 이왕기 등, 외암 민속마을, 충청남도 아산시,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