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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g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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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탄의 낮(왼쪽)과 밤

근대도시 상하이를 잘 설명해주는 곳. 국가에 의해 유지관리되는 근대건축물들이 아름다운 가로를 이루고 있다. 밤에는 건물을 비추는 색색의 푸트 라이트가 환상적인 가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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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동지구

고층 건물들이 경쟁적으로 올라가는 푸동지구는 동아시아 최대의 금융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흰색 고층건물은 SOM이 설계한 건물로, 완공을 앞둔(1999년 2월 현재) 88층 높이의 진마오따샤(金茂大廈). 이 건물은 높이 421m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1999년 8월에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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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동지구의 재래시장

고층 건물의 숲과 재래시장의 공존, 그러나 얼마남지 않은 풍경임을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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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푸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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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의 대비

근대주거지 뒤편으로 현대 고층건물이 보인다. 현대건물 속으로 외제 승용차가 미끄러져 들어가는 시간에 근대주거지에는 자전거의 물결이 흐른다. 도시에서 시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움직임의 빠름과 느림은 같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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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로의 백화점

네 모퉁이의 건물을 연결해주는 원형 육교가 인상적이다. 아래는 또다른 백화점의 내부, 화려함의 극치이다. 늘 고객들로 붐비는 백화점들은 자본주의의 어느 도시 못지않은 소비도시 상하이의 면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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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만

미국의 존 포트만(John Portman)이 설계하고 일본의 가지마(鹿島)건설이 시공한 상하이 상성을 상하이사람들은 그냥 포트만이라고 부른다. 외국 항공사의 대리점과 최고급 호텔, 최고가 브랜드의 상점들이 밤새 조명을 밝히고 있는 '포트만'은 중국과 세계의 비즈니스계를 연결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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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농주거지

 

상하이의 분위기

상하이의 첫 인상은 과히 좋지 않았다.베이징의 수도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도시고속도로가 주는 시원한 인상과는 달리 상하이의 홍차오(虹橋)공항에서 시내에 이르는 길가는 도시의 복잡함으로 가득 찼다. 무엇보다도 가로변의 아파트 외벽에 내걸린 잡다한 물건들이 도시관찰자의 눈과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애들이 오줌싼 이불, 아름답지 않은 속옷가지, 파리가 붙은 생선, 그리고 심지어 발가벗은 오리 고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것들이 내걸려 있었다.

상하이, 진작부터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 도시이었으며 최대의 경제 중심지로서 앞날이 밝은 곳이다. 와이탄(外灘)의 아름다운 근대건축 거리가 밤을 밝히고 난징조약(1842년) 이후로 서양으로 통하는 통로이었던 황푸강(黃浦江)에는 추억을 가득 실은 유람선이 화려하게 떠다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강 건너에는 중국 최대의 신개발지인 푸동(浦東)지구가 들뜬 미래를 예견하며 수십 개의 타워 크레인을 밤새 돌리고 있다. 고전 음악에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한 콘서트 홀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상하이 심포니를 들을 수 있고, 대문호 루쉰(魯迅)의 묘에 헌화하고 그의 유적을 더듬을 수 있으며, 아름다운 근대건축의 하나인 허핑호텔(和平飯店)에서 노악사들의 스탠더드 재즈를 들으며 저녁이 주는 쓸쓸함을 달랠 수 있는 곳, 상하이로 들어가본다.

우리나라에서 외국 여행을 할 때 가장 많이 보는 책 중의 하나인 '세계를 간다' 시리즈(일본 책을 중앙일보사에서 번역한 것) 중국 편에서 상하이를 소개하는 첫 마디는 '상하이의 매력은 바로 인간의 매력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 와보니 이건 거짓말이다. 도대체 사람이 많다는 게 매력이 될 수 있는가? 게다가 상하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필자의 눈에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공식 인구 1,464만명, 면적 6,340km2의 공룡같은 상하이는 거대도시의 병폐를 고스란히 안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길을 물어도 무안할 정도로 불친절하다. 큰 가로에서 잡은 택시의 기사는 빨리 타라고 신경질을 낸다. 타고나면 걷거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뒷골목을 미친 듯이 내달린다. 상하이는 중국 사람 특유의 무관심과 불친절의 절정을 보여주는 도시이다. 골목을 따라 구도시의 주거지로 접어들면 건물들과 함께 사람들도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러나 싫든 좋든 상하이는 우리에게 매우 뜻깊은 도시이다. 여기에는 1919년에서 1932년 사이에 우리의 임시정부가 있었다. 프랑스 조차지의 주거 블록에 위치한 임시정부 자리에는 그 흔한 안내판 하나도 없지만 그 주변의 주민들은 물론 대부분의 교양있는 상하이 시민들은 그 곳을 안다. "한국 임시정부가 있던 곳이 어딘지......?" "한국 임시정부라......? 아!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지요?" 그들은 모두 '따한민궈 린스쩡푸'를 정확히 일러준다. 필자가 상하이의 전통 주거지인 푸톈춘(福田村)에서 조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식당의 주인 아주머니는 거기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임시정부의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공연히 이상한 것 조사하고 다니지 말고 거기 먼저 가보라는 듯이.

윤봉길 의사가 일본군들을 향해 폭탄을 던져 죽이고 발목을 자르고 눈을 빼어 놓았던 의거의 장소도 상하이의 북부에 있는 홍커우공원(虹口公園)이다. 지금은 공원 이름도 루쉰공원(魯迅公園)으로 바뀌었고 일본군이 사열하는 단상이 놓였던 곳에는 중년의 남녀들이 사교춤을 열심히 추고 있을 뿐이지만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 장소이다.

 

기본적인 도시구조

상하이는 양쯔강이 바다로 이어지는 곳의 남안(南岸)에 자리잡았다. 서남부에 구릉지가 있으나 상하이는 기본적으로 평탄한 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구도시는 황푸강이 흐름의 방향을 90도 바꾸는 지점에 강변으로부터 서쪽으로 형성되어 나갔다. 그리고 그 구도시 사이를 황푸강 폭의 반 정도 되는 오송강(吳淞江)이 동서방향으로 가로질러 흐른다. 상하이 구도시의 내부 구조는 서양 여러 나라들의 조차지에 의해 형성된 것인데 가로는 기본적으로 비정형의 그리드 패턴을 가지고 있다. 남북방향의 길은 중국 각 성(省)의 이름을 따서 짓고 동서방향의 길은 도시의 이름을 갖다 붙였다.

그리고 상하이의 지도에는 다수의 푸른 점들이 뿌려진 듯 존재한다. 여러 블록이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명대(明代)에 조성된 위위앤(豫園)과 같은 전통 원림(園林)의 격식을 갖춘을 공원도 있지만, 대개는 근린공원의 성격으로 서로 연계성이 없이 점으로 존재한다. 사람들이 아침 일찍 몰려들어 기공을 하거나 춤을 추는 장소인 근린공원은 중국 도시에 필수적인 생활공간이다.

한편, 황푸강의 동쪽은 푸동지구로서 원래는 공업지구로 조성되었다. 이곳은 장래 아시아를 주름잡을 금융의 중심지로서 현재 대규모의 개발이 일어나고 있다. 푸동은 무역과 금융, 하이테크 산업에서  중국의 첨단기지를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루자주이(陸家嘴) 금융무역구. 진차오(金橋) 수출가공구. 와이까오차오(外高橋) 보세구. 창장(長江) 하이테크구 등 4개의 소구역으로 나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푸동 면적이 5백22㎢(서울의 86%) 이고 현재 1백5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상하이시의 도시화된 부분의 경계를 따라서 나있는 고리형의 고가도로가 도시순환 고속도로이다. 이 순환도로는 동측으로 푸동지구를 포함하며 서측은 항저우(杭州)로 연결되는 철도와 나란히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고리를 이등분하는 지점 쯤에는 남북방향의 연결 고가도로가 있다. 고리형의 순환도로는 두 곳에서 다리로 황푸강을 건너는데, 그 중 도시의 남쪽에 1991년 건설된 8,346m 길이의 난푸대교(南浦大橋)는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설계.시공한 현수교이다. 중국의 시공 현장은 겉보기에 허술한 장비에다 대개는 기계보다 인력에 의존하는 시공방식을 써서 대단히 엉성하고 낙후해 보인다. 그러나 교량, 댐 등 일부 토목공사 부분에 있어서 중국의 설계 및 시공 능력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다리가 그 예이다.

황푸강의 서쪽 구도시지역에서 순환도로의 중간쯤을 동서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지면의 가로가 난징로(南京路)이다. 이 난징로는 난징서로와 난징동로로 나뉘는데 난징동로는 중국 여러 도시의 가로 중 가장 번화하고 붐비는 곳으로 상하이시 상업지구의 줄기를 이룬다. 시정부(시청)는 물론 상하이상성(上海商城)을 비롯하여 대규모 백화점들과 공공시설들이 난징로에 면하여 있다.

서울의 명동과 같이 늘 인산인해를 이루는 난징동로의 동쪽 끝은 와이탄과 맞닿아 있다. 와이탄은 황푸강과 우송강이 만나는 지점부터 남으로 황푸강을 따라 자리잡은 좁고 긴 선적인 지역으로 통일성이 대단히 강한 도시의 지구이다. 와이탄은 서양인들이 호기심으로 먼 뱃길을 항해해와 정박한 곳이며 강을 바라보고 서있는 근대건축물로 이루어진 가로는 그 자체가 근대건축의 박물관이다. 와이탄은 인접한 황푸강과 함께 도시의 밤을 풍부하게 해주는 무대이다. 입구에 '개와 중국인은 들어오지 못한다.'는 간판이 있었다고 하는 와이탄의 황푸공원은 오늘날 강바람과 도시의 야경을 즐기는 시민들의 움직임으로 가득찬다.

 

근대와 현대가 공존

상하이의 역사는 남송(南宋)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오늘날의 상하이는 개항 후 서양 여러 나라들의 조계가 설치되는 근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45년에는 영국의 조계(租界), 48년에는 미국 조계가 설치되었고 1863년에는 양자가 합쳐져서 공동조계지(公共租界)가 형성되었다. 그 후에는 프랑스의 조계가 그 남측에 차례로 자리잡아 외국인의 거류지구를 이룬다. 1937년부터는 일본이 침입하여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 발발 후엔 급기야 여러 나라의 조계를 포함하여 상하이시 전체가 일제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이 몇 나라의 조계지들은 상하이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바탕이 되었으며 오늘날 구도시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가스, 상수도, 전기 등 도시의 하부구조(infrastructure; 중국에서는 시정(市政)이라고 함)가 갖추어진 것도 19세기 후반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설들은 중국인들의 거주지인 난시(南市), 자베이(閘北), 장완(江灣) 지구를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조계지를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었다. 또한 주거환경에 있어서도 조계지와 일반 중국인 거주지의 차이는 매우 컸다고 한다.

아무튼 베이징에서와 같은 고색창연한 역사 유적보다 근대 이후의 생생한 역사를 증언하는 곳이 상하이이다. 또한 상하이의 근대건축은 현대의 도시기능을 잘 담아내고 있다. 주택을 포함하여 아름다운 근대 건물에는 '우수 근대건축'이라는 팻말이 상하이시 인민정부의 이름으로 박혀 있고 은행, 관공서 등 여러 용도의 공공건물로 쓰이고 있다. 근대의 유산을 잘 추스려 온 것이다.

이러한 차분하고 느린 근대의 구도시지역과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푸동은 상하이의 '현대'이다. 푸동지구는 오늘날 중국 사람들에게 미래의 상징이요 희망이다. 1원(元, 1996년 당시 우리 돈 100원)을 내고 배에 올라 황푸강을 건너 푸동에 닿으면 개발현장의 흙먼지바람이 맞아준다. 구도시지역과는 바람까지도 다르다. 수퍼블록들을 구획하는 직선도로에 차들이 씽씽 달리는 템포가 빠른 현대도시가 나타난 것이다.

푸동지구와 구도시의 재개발지구에서 보이는 상하이의 현대는 대규모 구조물(mega structure)로 대변된다. 메가 스트럭춰는 저층으로 이루어진 근대의 늪을 뚫고 일어서듯 거만하게 도시를 굽어보는 높이로 솟아 오른다. 현재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은 말레이지아에 세워지는 두개의 탑으로 이루어진 KLCC건물이다. 삼성건설이 그 프로젝트의 시공에 참여하여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 그 건물이다. 그런데 얼마전 중국 정부는 그보다도 높은 건물을 상하이의 푸동지구에 짓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신문들에서는 그 건물의 모형 앞에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화보로 게재하였다. 이미 인구가 세계 제일이고 세계에서 서너 번째로 긴 강[양쯔강]이 있는데 또 무엇이 모자라서....... 하기야 1996년 1월 베이징 서역(西驛)이 준공되었을 때도 1월 19일자 China Daily에는 '아시아에서 제일 큰 기차역 개관'이라는 커다란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었다. 세계에서 제일 크지 않으면 아시아에서라도 제일 커야 되는지.......

이와 같은 거대사고증 또는 심하게는 거대망상증은 중국의 도시건설에서 흔히 마주치는 병이기는 하지만 그 증세는 상하이에서 더 극명하게 발견된다. 푸동에서는 더더욱. 도시의 랜드마크,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탑을 만들려는 과시욕의 상징인 동방명주탑이 우뚝 서 그것을 증명한다. 그 동방명주 탑에 오르면 푸동은 물론 상하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그 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현재 푸동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공사장이다. 아무튼 2~3층의 주거지와 고층 건물, 친절과 불친절,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과 상하이 특채(上海特菜), 빠른 생활과 느린 생활, 이런 대조되는 것들이 뒤섞여 있는 곳이 상하이이다.

 

상하이의 도시주거 석고문 이농주택

중국 도시를 보면서 가장 재미있는 것들 중의 하나는 도시마다 독특한 주거 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도시마다 음식이 다르고 말씨가 다르듯이. 베이징에는 사합원이 있고 상하이에는 석고문(石庫門)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건축전문가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재생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왜 우리나라 도시 어디에도 새로 지어진 한옥지구는 없는 것일까? 쓸데없이 전통 논쟁이 재연되는 것을 건축가들이 두려워해서인가?

'석고문'이란 석재로 문틀을 하고 목재로 문짝을 만든 대문을 말하는데 이농주택(里弄住宅)의 한 유형을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면 이농주택은 또 무엇인가? 이농은 주거지의 골목길을 말한다. 베이징에서는 호동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농주택이란 골목을 따라 형성된 연립주택 형식의 집합주거이다. 수십호의 이농주택은 진입 골목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1850, 60년대 조계지의 인구가 증가하자 부동산업자들은 이 때를 틈타 측벽을 맞댄 목조가옥을 지었다. 이후 화재를 피하기 위하여 벽돌조로 개량되어 이농주택이라는 유형으로 자리잡는다. 이농주택의 형식은 복잡하게 나누어지기도 하는데 대개 구식 이농주택과 신식 이농주택으로 나뉘고 구식 이농주택은 석고문 이농주택과 중정을 둘러싸는 원락식(院落式) 이농주택으로 나뉜다.

이렇게 볼 때 상하이의 이농주거는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근대주택이다. 그것은 장수(江蘇)와 저장(浙江) 지방의 전통 민가를 계승한 상하이 근대주택건축의 주요 유형으로 도시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농주거는 상하이시 중심부에 조계출현 이후 1949년 신중국 건립에 이르는 한 세기에 거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신중국이 성립된 1949년 상하이에서 이농주택 수는 상하이 전 도시주택 총수의 60% 정도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석고문 이농주택은 주로 1870년~1919년에 지어졌다. 석고문은 대개 2~3층이다. 공간구성을 보면, 대문이 종축상에 놓이고 대문을 들어서면 작은 마당, 곧 천정(天井)이 나온다. 천정에 면하여 가운데에 객당(客堂)이 놓이고 좌우에는 차간(次間)과 상방(廂房)이 있다. 객당의 뒷면에는 횡으로 계단이 설치되고 그 뒤에는 또하나의 좁은 천정(後天井)을 사이에 두고 부엌, 창고 등 보조용 방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주방은 대단히 면적이 작으며 화장실[衛生間]은 없다. 요리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중국에서 주택의 주방면적이 유독 작은 것은 이상하기도 하다.

이농주거에서 종축방향의 공간의 켜를 개간(開間)이라고 부른다. 이농주택은 개간의 증감에 의한 횡적 규모의 가변성, 그리고 다수의 천정을 매개로 부가함에 따라서 종적 규모의 가변성을 가진다. 이농주거는 이렇게 용지를 경제적으로 사용하면서 도시구조에 적응성을 가질 뿐 아니라 방화와 안전에 있어서도 우수한 도시주거 형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재개발의 압력 아래에 놓인 점은 다른 도시의 주거와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새로운 이농주택으로 재생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고층의 마천루에 자리를 양보한다.

그러면 석고문 지구로 가보자. 석고문 지구는 가로와 만나는 이농의 입구로부터 시작된다. 이농 입구는 공중전화와 식료품 가게들이 있는 공공공간의 성격을 가지며 입구로서의 성격이 명확하게 처리되어 있다. 그 입구를 들어서면 긴 이농이다. 여기서는 낯선 도시관찰가가 수상쩍게 쳐다보는 주민들의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이 골목길에 면하여 석고문이 나타나고 그 문을 열면 천정이 나오고 주거공간이 펼쳐진다.

석고문은 기본적으로 상류계층의 주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통적 석고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계층은 바뀌었다. 한 예로 펑라이로(蓬萊路)에는 일본과의 전쟁 직후인 1945년에서 1947년 사이에 지어진 석고문 지구가 있다. 이 3층짜리 석고문은 동상방(東廂房)이 없어서, 그러니까 3개간이 아닌 2개간 규모라서 큰 부잣집이었다고는 볼 수 없으나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의 주택이었다. 그러나 현재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주택을 관리하는 기관인 방관소(房管所)를 통해 직장(單位)에서 집을 분배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예전처럼 한 가족이 거주하는 석고문은 이제 없으며 해방(1949년) 이후 문(門) 하나에 10 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이농주거도 긴 시간을 통하여 형식의 변화를 겪는다. 즉 초기 석고문의 3개간 2상방(三開間 二廂房) 형식에서 아파트식 이농주택에 이르기까지. 이는 상하이 도시면모의 역사적 변화과정이기도 하다. 황푸강에 근접한 구도시에는 석고문 이농주택이 많고 그 서쪽에는 신식 이농주택이 많다. 이는 구도시가 전개해나간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상하이의 앞날

상하이는 기본적으로 공업도시로 출발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엄청난 소비도시화하였다. 시의 공업총생산은 전국의 7~8%를 차지하고, 그밖에도 경제, 과학기술, 무역, 금융, 정보, 문화의 중심지로서 전국 인구의 1%정도를 차지하는 시의 재정수입이 전국의 12.4%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중국의 수출입상품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6%에 달한다고 한다. 아직 상하이는 일인당 소득이 3,400$로 홍콩의 십분의 일에 불과하지만, 이미 중국 대륙에서 가장 잘사는 동네이며 21세기에는 세계의 경제중심지로 부상할 것을 꿈꾸는 곳이다.

그렇지만 상하이는 급작스런 인구집중으로 인하여 다른 중국의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주거문제를 가지고 있다. 상하이시 부동산관리국(上海市房産管理局)에 따르면 1988년 현재 약 1/4의 가정에 주방이 없으며 약 1/2의 가정에 변소가 없다고 한다. (上海市房産管理局, '상해이농민거(上海里弄民居)', 中國建築工業出版社, 1993, p.4) 일반 도시주택과 함께 도시의 하부구조도 노후한 상태이다. 그러나, 여기에 엄청난 규모의 개발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 30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백 개나 된다고 한다. 

구도시에서는 근대에 현대가 덮여 씌워지고 황푸강 건너에는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는 도시 상하이, 이 시간의 중첩을 어떻게 견뎌내는 가에 따라 이 거대도시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자동차가 자전거를 밀어내고, 마천루가 이농주택을 모조리 밀어내고야 말 것인지, 아니면 그것들이 균형있게 공존할 것인지.......

상하이의 근대적 분위기, 특히 이농주거지의 모습은 영화  '풍월(Temptress Moon)'을 통해서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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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상과 그의 집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일으킨 장소에서 루쉰 동상 쪽을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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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유지(마당로(馬當路)쪽의 모습)

프랑스 조계지의 한 이층짜리 이농주택에 임시정부가 있었다.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1919년 4월 김신부로(金神父路)에 자리잡은 이후, 장안로(長安路), 고잉의로(高仍依路), 하비로(霞飛路), 포석로(蒲石路) 등지로 이전하였다. 1926년부터는 마당로(과거의 마랑로馬浪路)  보경리(普慶里) 4호에 있었다. 위의 건물은 상하이 시대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이다.

소박한 한 주택이지만 그것을 보는 순간,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김구 선생의 흉상을 대하는 순간 가슴벅찬 감격을 느낀다. 이 주택은 우리가 상하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하나의 이유이다. 독립군의 소식들이 비밀스레 전해졌을 것 같은 골목 출입구가 왼쪽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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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돈, 돈......

오래된 주거지의 철거와 재개발은 중국 역사도시의 공통된 현상이다. 아래는 재신(財神) 앞에선 중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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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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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명주 탑의 낮과 밤

푸동지구의 개발방향을 상징하는 탑으로 도시 전체의 랜드마크이다. 이 탑은 468m 높이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TV타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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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농주거지

3~5층의 이농주택은 상하이 특유의 근대 도시집합주택이다. 이농주택이 도시구조 속에서 유지, 재생되면서 주거지가 도시의 전통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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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서 현대를 바라보다.

와이탄에서 푸동을 바라보는 시민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은 것일까? 상하이는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