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으로 본 한옥마을의 편안함과 위계질서  ㅣ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 ㅣ 2011-07-01 ㅣ [문화일보]

서양건축을 공부하던 건축학도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던 서울 북촌 한옥마을을 실측하면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았다. 크고 화려한 현대 건축에서 자연과 격리된 삶,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을 의식해야 했다면, 전통마을의 집과 나무에선 뭔가 편안함과 깊은 매력을 느꼈다.

26년 전 건축학도시절 전통 한옥마을에서 공간과 삶이 만나는 구체적인 방식을 발견하면서 오래된 마을의 순례가 시작됐다.

전국 방방곡곡 전통마을을 찾아다니는 가운데 그는 그곳에서 사람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공동체의 모습과 환경친화적 지혜를 만난다. 전통마을 답사의 결실은 2004년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됐고, 보완작업을 거쳐 7년 만에 전통마을순례기가 완성됐다.

26년간 전통마을을 연구해온 건축학자는 사상, 문화, 사회, 환경이라는 4가지 측면에서 전통마을의 건축 철학과 원리를 정리한다. 저자는 전통마을의 근본 사상은 같더라도 그 구현방법이 현실에 맞춰 다양하게 변주해왔다며 전통마을이 비슷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저자는 ‘한국마을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으로 경북 김천시 구성면 원터마을을 지목한다. 특출난 인물을 배출하거나, 대단한 한옥마을은 아니지만 저자는 조상에 대한 자부심을 간직한 문중사람들이 대대로 모여 살고 있는 그 마을에서 우리 삶터의 전형적인 단면을 읽어낸다.

지리적으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자연스럽게 산의 능선이 마을 경계를 이루고 있는 점도 전통마을답다. 경계지점에 대나무, 배롱나무 무리가 영역의 경계를 뚜렷이 나타내면서도 마을 앞쪽의 방초정이 마을의 중심시설로서 시각적 심리적으로 경관을 확장시키며 기능적이면서 환경친화적 구조를 이어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실의 필요와 삶의 논리에 따라 마을 공간이 형성되고, 전통의 왜곡과 단절이 없는 건강한 마을의 특징을 짚어낸다. 시대나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면서 질서의 틀을 여전히 보여주며, 환경친화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전통마을의 구조에서 서구와는 다른 ‘질서있는 사회’의 위계를 짚어낸다. 저자는 위계가 높은 집일수록 마을공간 뒤에 있는 ‘전후(前後)’개념은 ‘중심과 주변’에 따른 기독교사상의 서구 건축이론과는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남보다 나를 중심에 놓고 건물을 배치하는 등, ‘건물이 바깥에서 어떻게 보일까보다 건물 안에서 무엇이 내다보이는지’를 중요시한다. 이 같은 건축 특징에 따라 전통마을에선 바깥에서 둘러볼 게 아니라 건물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밖에 2010년 8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북 하회마을, 양동마을 등 전통마을 12곳이 현장 사진, 도면 등과 더불어 모습을 드러낸다. 대구 옻골마을, 경북 닭실마을, 한개마을 외에 충남 외암마을, 전남 강골마을, 낙안읍성, 도래마을, 강원 왕곡마을, 제주 성읍마을 등, 오랜 세월에 걸친 전통마을 답사기는 건축책이나 전통마을 안내서라기보다 역사 지리 풍속사를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