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ㆍ자연 공존하는 '전통마을' 재발견 ㅣ 이지수 기자 (riverful@daejonilbo.com)ㅣ 2011-07-09 ㅣ [대전일보]

외암ㆍ하회마을 등 12곳, 같은 듯 다른 사상ㆍ문화 조명

 “우리는 놀랍게도 전통마을에서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가치들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전통마을에는 공동체의 소통과 결속을 뒷받침하며, 소수의 사람들이 최상을 차지하기보다 모두가 최적을 누릴 수 있는 해법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과 하나되어 건강하게 공존하는 다양한 논리들이 숨어 있다”

 26년간 전통마을을 연구해온 한필원(50)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가 ‘건축학자의 시선’으로 한국의 전통마을의 가치를 탐구한 건축 순례기를 펴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을 비롯해 아산 외암마을, 대구 옻골마을, 성주 한개마을, 순천 낙안읍성, 제주 성읍마을, 보성 강골마을, 나주 도래마을, 봉화 닭실마을, 김천 원터마을, 고성 왕곡마을 등 전국의 대표적 전통마을 12곳을 다뤘다. 사상·문화·사회·환경이라는 보편적인 네 개의 시선으로 우리 전통마을에 숨어 있는 논리와 질서, 가치를 밝혀내고자 한다. 거대한 집학적 공간인 ‘마을’의 공간 배치를 거시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면서, 전통마을에 담긴 선조들의 건축학적 지혜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전통마을을 세심히 살피면 한국 문화는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성읍마을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양동마을, 도래마을, 닭실마을 등 대표적인 씨족마을에서는 마을 공간 곳곳에서 성리학자의 전형적인 삶의 방식을 읽을 수 있고 원터마을, 외암마을, 왕곡마을에서는 자연과 조화를 이뤄온 선조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전통마을은 “인간이 자연과 하나 되어 건강하게 공존”하는 논리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먼저 저자는 마을이 만들어질 당시 거주자들의 사상이 어떻게 마을공간에 구현되었는지 살펴본다. 특히 사상이 낳은 ‘위계성’ ‘확장성’ ‘다양성’에 주목한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이라는 지배 이념에 따라 마을 또한 앞뒤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위계를 달리했다. 즉, 종가처럼 위계가 높은 집일수록 마을 뒤편에 위치한 것이다. 신분제를 핵심 고리로 하는 위계질서에 따라 “종가는 안길의 맨 끝, 곧 주거지의 맨 뒤쪽에 있게 된 것”이다. 성리학이 내세우는 이런 ‘전후(前後) 개념’은 ‘중심과 주변’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기독교사상의 서구 건축이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또한 선조들은 마을을 독립되고 자족적인 공간으로 보지 않고 주변 지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았다. 옻골마을에서 보이는 것처럼 마을이 넓은 주변 지역을 경영하는 베이스켐프가 되기도 하고, 낙안읍성처럼 마주 보는 산의 기운에 대응하는 조각을 조성해 주변 지역을 주거공간으로 흡수하기도 했다.

 한국의 전통마을은 환경친화적 거주지이기도 하다. 거주지의 건설과 유지, 관리가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자연조건에 대한 적응 능력’을 비롯해, 자원의 소모를 최소화하고 자체 순환기능을 통해 일정한 재생능력을 갖춘 ‘자원의 순환 요건’,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것처럼 전통적인 ‘에너지 절감 시스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환경친화성을 형성한 주요 이론이자 방법론은 풍수지리로 ‘명당’은 곧 인간이 소속감을 느끼는 편안한 장소라고 말한다.

 “21세기에 더욱 주요하게 부각되는 삶의 가치들이 먼 서유럽의 건축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사는 이 땅의 수백 년 된 마을공간에 녹아 있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케 했다. 자연과 건축, 사람이 하나된 모습에 놀라움과 감동을 느끼며 나의 전통마을 순례는 계속되었다”

 저자는 현대 서양의 건축물과 달리 전통마을에서는 땅과 건축,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재발견할 수 있으며, 현대와 미래의 주거공간에 대한 유효한 지침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