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을공간에 뿌리내린 사상과 개념들 - 사상, 전통마을을 읽는 첫 번째 시선
 
저자는 마을이 만들어질 당시 거주자들의 정신, 곧 사상이 어떻게 마을공간에 구현되었는지 관심 있게 살폈다. 특히 사상 자체보다 사상이 낳은 ‘위계성’, ‘확장성’, ‘다양성’이라는 세 개념이 마을공간에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를 살폈다.
먼저, ‘질서 있는 사회’를 추구한 성리학은 마을공간에 ‘위계’를 부여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위계가 높은 것일수록 마을공간 뒤에 위치한다는 ‘전후(前後) 개념’이다. 이는 ‘중심과 주변’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기독교사상의 서구 건축이론과 다른 점이다.
또한 풍수와 성리학적 자연관은 마을을 구성하는 ‘확정성’의 개념을 낳았다. 선조들은 마을을 독립되고 자족적인 공간으로 보지 않고 주변 지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았다. 마을이 넒은 주변 지역을 경영하는 베이스캠프가 되기고 하고(옻골마을), 마주 보는 산의 기운에 대응하는 조각을 조성해 주변 자연을 주거공간으로 흡수하기도 했다(낙안읍성). 관찰자인 남보다 ‘나’를 중심에 놓기에 건물을 배치할 때 건물이 바깥에서 어떻게 보일까보다 건물 안에서 무엇이 내다보이는지를 중요시했다. 이러한 확장의 시각은 주체성과 연결된다.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전통마을에 가면 바깥에서 건축물 구경에 머물지 말고 건물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라고 권한다.
마지막으로 ‘다양성’을 들 수 있다. 전통마을의 밑바탕을 이루는 사상은 같으나 그 구현 방식은 현실 조건에 맞추어 매우 다양하다. 선조들은 《경국대전》, 《택리지》, 《임원경제지》, 《주자가례》 등과 같은 교범의 개념에 충실하면서도 현실에 맞게 다양하게 변주해왔다. 이 ‘다양성’ 덕분에 전통마을 답사는 늘 새롭게 다가온다.
 
 
2. 다양한 문화를 만나는 공간, 전통마을 - 문화, 전통마을을 읽는 두 번째 시선
 
마을은 사람들이 특정한 자연환경을 선택해 주거지를 조성하고 그 안에 인공환경을 구축한 결과물로, 그 안에는 사람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사람의 집단, 문화, 물리적 환경은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어 이들 중 하나만 떼어내어 본다면 마을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따라서 전통마을의 문화는 총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성읍, 하회, 강골마을을 통해 전통마을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토속적인 공간 속에 부모와 자녀 세대의 평등한 삶을 구현하고 있는 성읍마을, 양반과 평민 계층이 서로 용인하고 지지하면서 공존해온 하회마을, 전통마을이 근대기에 변모해간 양상을 다양한 한옥의 출현으로 살펴본 강골마을을 통해 문화의 다양함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신당(神堂)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다른 공간 구성을 나타내고 있는 성읍의 안할망당과 하회의 삼신당을 비교해본다면, 전통마을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기존 관념이 얼마나 잘못된 통념인지 깨닫게 된다.
 
 
3. 씨족마을, 관계가 만드는 유기체적 공간 - 사회, 전통마을을 읽는 세 번째 시선
 
씨족은 동성동본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으로, 씨족마을은 하나 또는 몇 개의 씨족집단이 일정한 지역에 모여 사는 것을 일컫는다. 종가를 중심으로 모인 씨족마을은 가족들이 분가하면서 사람과 집이 함께 증가하거나 또는 줄어들기도 하고, 또 새로운 씨족이 유입되기도 하면서 유기체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조선의 사림들은 대개 씨족마을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공부하고, 일부는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관직에 진출했다가 말년에 낙향하여 제자를 양성하고, 죽어서는 마을 선산에 묻히고 영혼은 사당에 모셔졌다. 이렇듯 씨족마을은 성리학자의 전형적인 삶의 방식과 대응하면서 공간을 구성했으며, 그러한 면에서 조선 후기 사회학의 참고서라 할 만하다.
이 책에서는 양동, 도래, 닭실마을 같은 씨족마을에서 거주자들의 사회관계가 공간구조(길, 주택, 공동시설, 산, 물, 나무 등과 같은 요소들이 맺고 있는 상호관계)에 어떻게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폈다.
 
 
4. 지속 가능한 오래된 미래, 전통마을 - 환경, 전통마을을 읽는 네 번째 시선
 
‘자연과 조화로운 삶’으로서의 한국의 전통마을은 환경친화적 거주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환경친화적 거주지’란 거주지의 건설과 유지와 관리가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자연조건에 대한 적응 능력’을 비롯해, 자원의 소모를 최소화하고 자체 순환기능을 통해 일정한 재생능력을 갖춘 ‘자원의 순환’ 요건, 그리고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것처럼 전통적인 ‘에너지 절감 시스템’ 요건을 갖춘 곳을 말한다.
한국 전통마을의 환경친화성을 형성한 주요 이론이자 방법론으로 풍수지리가 있다. 풍수지리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장소를 찾는 이론으로, 이상적인 땅을 뜻하는 ‘명당’은 곧 인간이 소속감을 느끼는 편안한 장소에 다름 아니다. 한국에서는 실제로 이상적인 장소가 많지 않으므로 부족하고 문제가 있는 곳을 보완하는 ‘비보(裨補)’ 풍수 개념이 발달해 있다.
이 책에서는 부동산 가격이라는 풍향계가 지시하는 대로 보따리를 싸야 하는 도시 유목민과 달리, 전통마을에 깃든 지속가능성의 비결을 원터, 외암, 왕곡 세 마을 답사를 통해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