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펴낸 한필원 교수 ㅣ 박종현기자 (bali@segye.com) ㅣ 2004-12-3 ㅣ [세계일보]
"문화와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현재를 이해하면서 밝은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를 돌아보고 전통을 탐구해야 합니다.” 농촌주택과 전통마을 연구에 매진해 온 한필원(43·한남대학교 건축학부·사진) 교수는 전통에 대한 탐구 활동에 주력하는 학자다. 한 교수는 특히 우리의 전통가옥을 살펴보면 사회관계와 자연조건의 절묘한 결합의 교훈을 얻게 된다고 강조한다.
“나이든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더라도 많은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수백년 동안 이어진 우리의 삶터에 배인 정신과 지혜에 귀 기울이는 것의 중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1, 2를 내놓은 한 교수는 인터뷰에서 ‘공간과 사람이 나누는 조화의 아름다움’을 설명한다.
“서양의 마을과 달리 우리의 전통마을은 위계가 높은 사람의 집일수록 마을 뒤에 자리잡을 뿐 물리적인 위계는 드러내지 않습니다. 또 마을의 전면에는 사회적 활동이 가능한 공간이 자리하고, 후면에는 정신적인 영역을 담당하는 공간이 자리잡아 마을 내에서도 조화가 이뤄집니다.”
서양의 마을이나 도시가 ‘중심과 주변’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한국의 전통 마을은 질서와 조화를 꿈꾼 공동체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책에서 사상을 비롯한 문화, 사회학, 환경생태학의 4개 주제를 만들고 그 범주에 해당하는 마을을 3개씩 골라 12개 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그가 전통마을로 선정해 찾은 곳은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 대구시 옻골마을 등이다. 한 교수는 조화의 아름다움을 위해 먼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자고 제안한다. “‘고건축과 현대건축’ ‘한국건축과 서양건축’이라는 형식적 이분법에 익숙한 한국 건축계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집필의 절반은 2003년 8월부터 1년간 방문교수로 있던 미국 뉴욕주립대학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물질문화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나이애가라 폭포 쪽을 바라보며 우리의 전통마을에 대한 생각을 풀어낼 때는 가슴 벅찬 감정과 두려운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한국의 전통문화라는 방대한 대상을 담아낸다는 기쁨과 함께 제한된 시간에 많은 분량을 써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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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의 절반은 귀국해 완성했다. 밖에서 집을 바라보며 관찰하는 것보다도 일반인과 함께 일주일 이상씩 직접 숙식을 하며 생활한 것은 전통마을에 대해 제대로 집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많은 경우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살핌으로써 주거 공간 디자인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관찰자인 남이 아니라 거주자인 나를 중심으로 전통마을을 살펴보고픈 생각 때문이었지요.” 민속마을로 지정되지 않은 많은 마을들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짙은 안타까움도 피력했다. |
“전남 영광군 묘량면 효동마을은 1998년만 해도 정책적으로 보존되는 민속마을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초가가 가장 많이 남아 있고 여전히
주거로서 사용되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화의 물결에 휩쓸렸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마을 자료 정리와 종합적인 보존 방향에 대한 연구를
서둘러야 합니다.”
한 교수는 한국의 전통마을 탐구 외에도 동아시아의 전통 주거지를 해석하는 일을 필생의 연구 과제로 삼고 있다.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설립한 ‘아시아건축연구실’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연구와 실무 사이에 선을 긋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설계를 위해 해석된
아시아의 전통주거’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 연구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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