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미 있는 건축학자의 아름다운 포옹 ㅣ 이종찬 기자 ㅣ 2004-12-28 ㅣ [오마이뉴스]

개는 인간과 가장 친밀한 동물이지만 '개'라는 접두사가 붙은 말들에서 알 수 있듯이 비천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탓인지 개를 수호신으로 두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이곳에 이례적으로 개를 둔 것은, 감시를 하되 권위적이기보다는 친근감 있게 하려는 의도 때문인 듯하다.

만일 거기에 호랑이 같은 맹수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집에 갈 때마다 긴장감이 맴돌지 않았을까? 그러나 돌개를 굳이 이 자리에 둔 데는 좀더 깊은 뜻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알아보니 그것들은 읍성 동쪽에 있는 오봉산의 나쁜 기운을 누르기 위해서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오봉산을 바라보니 뭉툭하게 생긴 것이 매끈한 금전산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낙안 팔경에 오봉명월(五峰明月)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오봉산이 사람들에게 거슬렸던 것은 생김새보다 위계의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봉산은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인데 감히 진산인 금전산이 갖는 최고의 위상에 도전하는 듯 우뚝 솟아 있기 때문이다.

- 139~139쪽, '낙안읍성' 몇 토막

사람들의 눈썰미는 저마다 다르다. 그 어떤 모습을 보고 눈에 비치는 그대로 꾸밈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어떤 모습을 스스로의 잣대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이리저리 구부리고 늘어뜨리는 사람도 있다. 또한 그 어떤 모습의 속내 깊숙히 숨겨진 멋과 맛, 숨결까지 느끼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눈썰미가 있다'고 할 때의 그 '눈썰미'는 바로 그 어떤 모습을 꾸밈없이 받아들이면서 그 어떤 모습의 속내에 담긴 진정한 아름다움에 흠뻑 젖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일 게다. 내가 그 어떤 모습이 되고 그 어떤 모습이 내가 되어 나와 그 어떤 모습이 꼭 하나로 더해지는 그 꼭지점에 '눈썰미'라는 말이 숨어 있다는 말이다.

한남대에서 건축학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는 한필원 교수가 바로 그런 눈썰미 있는 사람이다. 한 교수는 그만의 독특한 눈썰미를 갖기 위해서 지난 20년 동안 우리 나라 곳곳에 숨어 있는 전통마을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 전통마을의 속내에 포옥 빠져 전통마을이 숨겨놓은 멋과 맛 그리고 숨결까지 고스란히 듣는다.

"우리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의 충격이며 감동이고 교훈이다. 마을에는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땅과 인간의 관계가 드러나며, 그토록 왜소해 보였던 자신이 어느새 땅 위에 우뚝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마을에는 그곳에서 살다간 또 여전히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이들의 따스한 숨결이 배어 있다."

- '들어가는 글' 몇 토막

한남대 건축학부 한필원(43) 교수가 '공간과 사람이 나누는 조화의 아름다움'이란 덧글이 붙은 우리 나라 전통마을 답사기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1, 2>(북로드)를 펴냈다. 이 책은 글쓴이가 지난 1985년부터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답사한 우리 나라 전통마을의 꾸밈없는 겉모습이자 속내를 파헤친 현장 보고서이다.

모두 2권 4부로 이뤄진 이 책에는 12개의 전통마을이 숨을 쉬고 있다. 1권 제1부 '마을에 담긴 정신'에는 옻골마을과 한개마을, 낙안읍성이, 제2부 '마을에서 읽는 우리 문화'에는 성읍마을, 하회마을, 강골마을이 담겨 있다. 2권에는 제3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응축된 마을'에 양동마을과 도래마을, 닭실마을이, 제4부 '마을에 담긴 환경 친화성의 지혜'에는 원터마을, 외암마을, 왕곡마을이 나온다.

한 교수는 '들어가는 글'에서 "대략 원고의 절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2003년 8월부터 1년간 방문교수로 있었던 뉴욕주립대학(미국 버펄로) 연구실에서 썼다"고 말한다. 이어 전통마을에서 한없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글을 쓰다 보니 그 어떤 의문들을 즉시 풀어내기가 어려웠다고 솔직하게 밝힌다.

그 때문에 글쓴이는 미국에 있는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다시 우리 나라에 들어와 답사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정확한 글을 쓸 수 있는 곳은 현장"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연구실 안은 16세기의 한국 마을이고, 연구실 문 밖은 21세기의 미국도시였다"라고 고백하는 글쓴이의 말이 귀에 쟁쟁거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옻골의 고밀도 주거지에는 어떤 질서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주거지의 중간쯤에 있는 정려각으로부터 실마리를 풀어보자. 이 정려각은 백불암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789년(정조 13) 정조가 내린 것이다. 백불암 연보에 의하면, 그는 2세 때 어머니가 젖앓이로 통증을 느끼자 다시는 젖을 빨지 않았다고 하며, 31세 때에는 부친의 병세를 살피려고 대변을 맛보기도 한 효자이다.

효성으로 정려를 받은 사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부모의 대변을 맛보는 상분(嘗糞)과 손가락을 잘라 절명하려는 부모의 입에 피를 넣어 드리는 단지주혈(斷指注血)인데 백불암은 전자를 실천한 경우이다. 후자에 해당하는 매우 극적인 예는 왕곡마을의 '양근함 씨 4세 효자각'에서 볼 수 있는데, 그 효자각은 4세에 걸쳐 부친에게 단지주혈한 사연을 담고 있다.


- 41쪽, '옻골마을' 몇 토막

글쓴이가 우리 나라 전통마을을 살피는 눈썰미는 깊고도 폭이 넓다. 그 마을이 생기게 된 이유에서부터 그 마을에 깃든 여러 가지 사연과 그 마을의 지리적 위치, 주거형태, 건축적 의미와 문화적 의미까지를 두루 내다본다. 게다가 옻골마을의 안길을 보면서도 "과거에 여자들은 안길로 잘 다니지 않았다"며 안길에서 조금 떨어져 숨겨진 듯 그 모습을 드러내는 오솔길을 찾아낸다.

남성들이 주로 다니던 안길을 훔쳐보는 듯 어른거리는 그 오솔길이야말로 그 당시 여자들이 다녔던 길이라는 것이다. "종가 사랑채의 서측에 있는 담이 뚫려 있는 것도, 담이 허물어진 것이 아니라 오솔길로 들어온 여자들이 그곳을 통해 중문간을 거쳐 안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일부러 개구부"를 남겼다는 것.

낙안읍성에 가서는 "곧 떠가는 배의 모양"을 찾아낸다. "서내리의 빽빽한 대나무숲, 그것은 백이산 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뱃머리를 상징한다"고 느낀다. 이어 대나무 숲을 바라보면서도 "사철 풀색을 잃지 않는 대숲은 쉼없이 항해하는 배"며, 읍성 가운데 있는 은행나무는 "돛", 성벽 북동쪽에 있는 거목들은 "노"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 어떤 모습이 일단 글쓴이의 눈에 비치면 글쓴이의 심상(心象)에서 오래 발효되어 새롭게 태어난다. 그렇다고 글쓴이가 섣부른 지식과 섣부른 감각으로 우리의 전통마을을 이리저리 구부리고 늘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는 그 지역이 갖고 있는 지리적, 환경적 특수성까지 차분히 더듬는다.

우리의 마을과 문화에 제법 익숙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제주도 사람이 아니라면 성읍마을에서 독특하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거무스레한 현무암의 외벽과 담장 그리고 새를 이은 납작한 모양의 초가는 독특한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 돌과 새, 이 두 가지 재료는 모두 마을의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제주는 발길 닿는 곳 어디나 억새밭이다. 그 중에서도 억새오름길이라 불리는, 성산 일출봉에서 성읍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억새가 무성하여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다. 성읍마을에는 성문과 관공서 건물을 제외하면 기와집이 한 채도 없다. 일반 민가들의 지붕에는 새가 재료로 쓰였다.

- 222쪽, '성읍마을' 몇 토막

글쓴이는 성읍마을이 돌과 새로 이루어진 이유가 "농토가 부족하여 볏짚은 충분히 확보하기 힘들지만 새는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 "새를 이고 새끼를 격자형으로 둘러 고정시킴으로써" 바람 많은 제주도의 거칠고 억센 날씨까지 이겨낼 수 있었다고 되새김질한다.

성읍마을 곳곳을 에워싸고 있는 돌도 마찬가지다. 글쓴이는 만약 성읍마을이 "육지였으면 나무로 만들었을 것"을 성읍마을이 현무암이 많은 섬에 있었기 때문에 마루와 벽, 바닥까지도 모두 돌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짚어낸다. 게다가 "투박해 보이는 큼직한 돌로 쌓은 돌담과 건물의 외벽"은 제주 사람들의 강건한 정신까지 깃들어 있다고 귀띔한다.

성읍마을의 돌담 사이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언뜻 보기에 돌담을 쌓은 이의 정성이 부족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글쓴이는 돌담 사이에 구멍이 나도록 해야 제주의 강한 바람에도 잘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만이 바람이 세게 불어도 "담이 건들건들하지만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성읍마을 이영숙 가옥 

ⓒ2004 북로드


지배층인 양반들과 피지배층인 서민들이 각기 자신들의 공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조화롭게 유지하여온 하회마을에서 주거 공간 만들기의 숙제인 '사회적 통합'에 대한 암시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양반들이 뱃놀이를 즐길 때 서민들은 그러한 놀이에 필요한 뒷바라지를 해주었고, 비록 양반층을 비난하는 풍자를 담고 있지만 탈춤판을 벌일 때는 양반층이 그것을 수용하고 나아가서 소요되는 경비를 제공하였다. 이렇게 하회마을에 함께 거주하는 두 계층은 나름의 공간적인 토대를 가지고 서로를 용인하고 지지하면서 공존하여왔다.

- 299쪽, '하회마을' 몇 토막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 한필원의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1, 2>는 우리 전통마을을 아끼고 사랑하는 눈썰미 있는 건축학자의 아름다운 포옹이다. 한 교수는 "나이 드신 어른들과의 대화에서 많은 삶의 교훈"를 얻는 것처럼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우리의 전통마을에서 21세기 건축미학, 환경생태미학의 새로운 디딤돌을 찾는다.

한남대 한필원 교수는 누구인가? 
 20년 동안 우리 전통마을 답사 


▲ 아시아건축연구실 연구원들과 함께(오른쪽 첫 번째가 한필원 교수) 
ⓒ북로드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 한필원은 1961년 대전서 태어나 농촌주택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전통마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1995년까지 <성림종합건축사사무소>와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설계 일을 했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중국의 <칭화대학>(淸華大學) 건축학원에서 연구했으며,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의 <뉴욕주립대학>(버펄로)에서 방문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아시아건축연구실>(Asian Tradition in Architecture)을 이끌고 있다. 함께 펴낸 책으로 <주거의 문화적 의미> <지식의 최전선> <한국의 전통생태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