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을서 미래의 삶터를 찾다 ㅣ 윤승아 기자 (ah@heraldm.com) ㅣ 2004-12-4 ㅣ [헤럴드경제]

하회마을에서 ’도저히 버릴수 없는 욕망을 비스듬히 껴안고 가는 이의 품격’을 논한 사람은 소설가 김훈씨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서로 마주 보지 않은채 적당히 외면하고 있다. 길들은 강 하(河)자, 돌 회(回)자를 걸맞게 굽이치는 강물의 형상을 띠고 있다. 하회마을의 길들은 대문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들지 않는다. 모퉁이를 에돌아가는 길은 드러남과 감춤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건축물은 정신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건설회사가 불특정다수를 위해 만든 건물 속에 살고 있다. ‘나의’ 방바닥이 ‘남의’ 천정 되는 아파트. 사람들은 더이상 자기 사상이 건물에 투영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얇고 납작한 평면의 누적’속으로 전생애를 흘려보낼 뿐이다.


건축학자 한필원씨(43,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간에 반영된 정신성을 탐구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적어도 전통마을에 가면 당대 지배사상이었던 성리학 및 풍수지리설, 샤머니즘 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씨의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북로드,전2권,1만5000원)는 살아있는 화석인 민속마을의 답사기다. 안동 하회마을, 온양 외암리 등 12개 옛마을을 돌아본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건축학적 지식이 녹아든 묵직한 책이다. 가령 간격(Distance)과 높이(Height)의 비율이 1대 1일때 개방감과 폐쇄감이 균형을 이뤄 아늑한 느낌을 준다는 것. 바로 그 비율인 하회 삼신당 골목은 가운데서 양팔을 뻗으면 손가락이 담장에 닿는다는 것은 건축학자 아니면 들려주기 힘든 이야기다.

저자는 또 하회마을 옆 병산서원이 건축가들도 쩔쩔 맬 과제를 훌륭하게 해결한 사례라 말한다. 병풍 병(屛)자에 산 산(山)자를 쓰는 이 서원은 공중 누각인 만대루의 여덞기둥을 통해 앞산을 7폭 병풍으로 황금분할한다. 만고절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이 호사스런 서원엔 유교적 긴장감이 있다. 병산서원에선 술자리를 벌일 수 없다. 서안을 가까이함이 마땅하다. 책상위에도 불경, 도덕경은 올라올 수 없다. 병산서원은 호연지기를 기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성주 한개마을 등 전통마을의 공간 미학을 분석함으로써 현실 및 미래 주거지의 바람직한 모델을 찾는다. 초가집이 많은 순천 낙안 읍성은 초봄 이엉을 새로 얹었을때 가장 아름답다. 동양화처럼 대상이 화폭 중앙을 벗어나 있는 것처럼 낙안읍성의 중심길도 약간 비스듬하다. 낙안읍성에서 한일(一)자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곳은 동헌이다. 홀수 칸인 동헌은 좌우대칭형으로 정면성을 강조한 건물이다. 정면성은 권위의 상징. 1970,80년대 관공서 현상공모에 당선되려면 좌우대칭형 건물을 높은 기단위에 올려 놓아야했다. 저자는 “그 원조가 낙안읍성인 듯하다”며 “요즘 관청 건물을 좌우대칭으로 설계하면 비민주적이라고 예선탈락된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