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마을, 조상의 지혜가 보인다 ㅣ 남상현기자 (southern@dinz.net ) ㅣ 2004-12-6 ㅣ [대전일보]

▲ 왕곡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례를 갖춘 함세균 가옥의 굴뚝


자연 사람 모두가 조화이룬 삶 터 보존 아닌 지속 가능한 보전 필요

충남 아산시 외암마을은 세 면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일반적인 전통마을 입지를 크게 벗어나 있다. 겨울에는 북서 계절풍에 노출돼 있고 마을 북·서쪽으로 큰 개울이 흘러 풍수지리상 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외암마을에서는 공허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상징과 실용성을 갖춘 수(水)체계와 녹지 공간 등 불리한 입지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해 낸 보완 장치에 주목한다.


외암마을이 오랜 기간동안 주거지로 유지되기 까지는 자연 요소의 최대한 이용과 건축 방식의 조절등 좀 더 나은 거주 환경을 만들기 위한 일관된 노력이 있었다는 것.

신간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는 전통마을을 건축학자의 시각으로 경관·생태·공간 등 다양한 방면으로 심층 분석하고 있다.


마을에 담긴 정신·문화·사람들과의 관계·환경 친화성 등 4개 주제에 부합하는 3개 마을, 총 12개 마을이 그 대상. 대구 옻골마을·전남 순천시 낙안읍성·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전남 보성군 강골마을을 비롯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경북 봉화군 닭실마을·강원도 고성군 왕곡마을 등 문화재로 지정된 민속마을과 ‘의미 있는 질서’를 지니며 개발논리에 치여 급속한 속도로 사라져갈 수 있는 공간이다.


다른 집을 가리지 않고 조금 비켜 자리잡은 닭실마을은 ‘조화와 양보’의 미덕을 일깨워주며 강골마을은 새로운 시대 정신을 반영한 근대성을 담아내고 있다. 자연과 사회의 합치의 노력이 서려 있는 도래마을, 개발 논리와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왕곡마을, 자연과 사람의 어우러짐이 인상적인 낙안읍성 등 우리네 전통마을은 한결같이 혼자만을 위한 ‘최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즐거운 ‘최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통마을에 대한 단순한 ‘해설’에서 벗어나 ‘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운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전통마을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도 드러나 있다.


그는 건축을 한국·서양 건축, 고건축·현대건축으로 구분짓는 형식적 이분법에 일침을 가한다.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전통과 명백히 단절된 근대로 이행한 적은 없습니다. 전통은 규범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근대성을 특징짓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근대와 현재,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에 대한 연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또 전통마을 핵심과제인 ‘보존과 활용’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왕곡마을의 예를 들며 “2000년 민속마을로 지정되면서 18년만에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사회적 지속성에 위기를 초래했다”며 “원형을 유지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전통마을에 가해지는 가장 심각한 제약”이라고 지적했다.


“민속마을은 무조건적 ‘보존’이 아닌 지속가능한 ‘보전’이 필요합니다. 주거 환경의 원형을 고수하라는 것은 전통마을을 박물관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고 이는 결코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은 곳에서 역사적·문화적 분위기를 경험하고 생생한 교훈을 얻기는 어렵겠죠.”

저자가 직접 찍은 생생한 사진과 마을지도, 주변 문화재 등 친절한 설명이 돋보인다.

 

▲ 낙안읍성 집들은 규모. 공간 구성. 재료. 색채 면에서 통일성이 강하다.

 

▲ 외암마을 주거지에서 발견되는 도랑. 주거지 내부에 간단한 배수로 이외에 수로가 형성돼 있는 경우는 전통마을에서는 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