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으로 가득한 세상


우리 인간은 자기만의 특정한 장소를 무한정 다양하게 점유하거나, 상상하거나, 창조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에 우리는 흔히 ‘유형’이라고 불리는 무수한 장소와 공간의 범주들을 창조하고 사용함으로써 환경을 구성한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장소들을 유형으로 집단화하고 개별 장소들은 그런 집단에 속하는 요소로 간주한다. 이렇게 공간을 여러 종류로 분류함으로써 ‘공간을 유형화하는 것’(ordering of space)은 삶의 본질적 측면이다.

쇼핑센터, 놀이동산, 피터팬의 네버네버랜드, 천국과 지옥 등은 모두 인간이 문화적으로 고안해낸 장소 유형이다. 장소유형은 건축, 계획, 정책, 종교, 연구, 대중문화, 문학과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된다. 이 세상은 장소유형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ordering space’는 ‘공간을 장소의 유형들로 정리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유형들은 우리가 만든 사회적 구성물로서,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인식의 차원) 그 안에서 설계하고 건설하고 규제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유형들을 사용한다.


유형학을 다채로운 시각에서 정리한 종합이론서


이 책은 건축학ㆍ미술ㆍ도시계획학ㆍ조경학ㆍ정책학ㆍ환경과학ㆍ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18명의 필자가 참여해 유형학이라는 이론을 폭넓고 다채로운 시각에서 다룬다. 이 책의 목적은 19세기 초 유럽 건축계에서 연구ㆍ활용되기 시작한 유형학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예술을 망라하는 여러 분야에서 유형학이 사용되는 방식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함으로써 그 나름의 활용방식을 찾도록 이끈다. 또한 인간활동에서 유형의 위치, 그리고 우리가 세계 내에서 공간과 장소를 고안하고 변형하고 운용하기 위해 유형에 의존하는 방식들을 논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형학의 학문적 활용도는 매우 크지만 우리 학계에 그것을 포괄적으로 소개하는 책이 없다. 유형학에 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서로 학술적인 깊이와 활용성을 지닌 이 책이 번역출간됨으로써 그 학문적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