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ㅣ신동아ㅣ2012년 12월호

 

인간다운 삶을 지지하는 공간이나 장소를 디자인하는 근거와 기준을 찾고자 나는 전통마을을 연구해왔으며 점차 역사도시로 관심을 넓혔다. 지난 7년간은 밀양, 통영, 안동, 춘천, 안성, 강경, 충주, 전주, 나주 등 긴 역사를 가진 도시, 걸어서 다닐 수 있을 만큼 도심이 작은 도시, 그리고 현대도시로서 매력과 잠재력이 큰 도시들에 푹 빠져있었다. 이 책에는 그 도시들을 걸으며 생각하고, 쓰고, 그리고, 찍은 내용을 담았다. 흥미로운 장소와 이야기, 소소한 감흥과 재미, 그리고 교훈들을 실었다. 무엇보다도 그 도시들의 골목길을 걸으면서 맛본 행복감을 전하려했다. 밋밋하게 확장된 현대의 시가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인구의 십중팔구가 도시에 살지만 정작 우리 도시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실 자신이 사는 도시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삶의 공간을 이해하지 않고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해 없이는 사랑도 없다. 삶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수는 없으리라.

우리 도시들이 어수선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이면에는 나름의 질서와 논리가 있다. 놀랍게도 그것은 주변의 산과 강의 흐름에 이어져 있다. 우리 도시는 동아시아의 문명이 낳은 골격을 갖추었지만 지형과 물길 같은 자연 조건에 따랐다. 그래서 도시공간이 변화가 많고 흥미롭다.

온통 새 것으로 가득 차 보이는 역사도시에서도 큰 가로의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배인 오래된 공동체의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공간들을 이어주는 것이 골목이다. 도시마다 골목에 얽힌 이야기도, 골목의 모양도 다르다. 나주에서는 골목이 길게 이어지지만 안동에서는 막다른 골목으로 짧게 끝난다. 골목 자체가 도시의 특성이고 콘텐츠다.

20세기 후반 우리 사회는 광적으로 도시개발을 했고, 보전과 개발이라는 모순을 해결하지 못해 오래된 도시 옆에 신도시를 만들었다. 이렇게 한 도시가 두 가지 공간과 이미지를 가져서는 정체성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도시공간의 이원성을 이해하고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 이원성이란 도시공간이 주요 가로라는 선()과 그것들로 구획되는 면()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대규모의 국제주의 양식 건물들은 주요 가로 변에만 배치하고 그 안쪽의 면은 도시 특유의 주거유형으로 이루어진 작은 공동체의 공간으로 지속시키면 도시의 정체성과 기능성을 모두 갖출 수 있다.

나는 도시의 과거를 논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우리와 후손들이 살아갈 도시의 앞날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래서 아홉 도시를 논한 각각의 글을 그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도시의 여행자는 물론 도시정책 수립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홉 도시에서 일상을 보내는 시민들께 이 책을 권한다.

한필원 / ATA 대표,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