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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생태학 ㅣ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ㅣ 2004-9-24 ㅣ [한겨레]
고향가는 길은 전통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거기엔 가부장제의 우울한 그늘과 생태주의의 소박한 즐거움이 공존한다. 모처럼 만난 혈육들은 켜켜이 쌓인 애증으로 다투다가, 돌아서서 제 아이들에게 농촌의 목가적 삶을 일러준다. 전통에 대한 ‘지양’의 필요성이 이렇듯 극명하게 드러나는 때가 없다. 버릴 건 버리더라도 생태주의만큼은 반드시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귀향의 짐을 그나마 덜어줄 수 있다. 전통에 대한 적극적 포용의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확대재생산을 향한 무한경쟁이 개인의 삶은 물론 인류 전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이때, <한국의 전통생태학>(사이언스 북스)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모델을 우리 자신의 전통에서 발굴해 냈다. 이로 인해 전통은 과거를 답습하는 ‘수구’가 아니라, 미래를 모색하는 ‘진보’의 편에 설 수 있다.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가 주관해온 ‘전통생태모임’은 “옛사람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생태학적 지혜가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줄 희망을 가진다”고 믿는 연구자 집단이다. ‘전통생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과의 정립을 시도하는 이들은 우선 생물학, 에콜로지 등의 개념으로부터 생태학을 독립시킨다. “생물학은 생명공학의 이름으로 물질문명의 첨단으로 가고자 하는 태도”이며 “(서구적 개념인) 에콜로지는 그 안의 생물보다 이를 감싼 환경에 더 주목”(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한다. 그런 점에서 바깥 환경이 아니라 그 안의 생물을 중심으로 말하는 ‘생태학’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올바른 사유다. 거기에 굳이 ‘전통’을 덧대는 이유도 분명하다. “생태야말로 장소가 갖고 있는 모든 환경적 특성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민감한 반응으로 귀결되는, ‘장소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이다. 전통의 생태적 사유는 멀리 있지 않다. 오늘날 도시적 삶의 기본단위인 ‘동(洞)’에는 물(水)이 같은(同) ‘유역’을 통해 삶의 공간을 구분했던 전통이 남아있다. 유역 단위로 물질의 내부 순환이 작동한다는 세계관은 풍수사상에 집약돼 있다. “자연이 결정한 길지를 찾아 적응하고, 자연의 결점을 인간이 보강하되, 어떤 지역이건 환경의 개발에는 한계가 있다”(윤홍기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교수)는 것이다. 이 개념을 나라 전체로 확대한 것이 ‘백두대간’이다. “우리 자연환경의 틀을 본받아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정신이 응축된 개념”인 백두대간은 “나라 전체를 맥으로 연결된 땅으로 파악하고, 하나의 뿌리를 가져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공동체”(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로 본다. 지은이들은 우리 선조들이 이런 인식체계 아래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태적 삶을 실현시켰는지 보여준다. 마을의 입지를 택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마을 숲을 가꾸며, 에너지와 자원을 얻기 위해 마을 공유지를 관리하는 것 모두가 ‘생태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귀향을 통해 얻어야할 깨우침도 여기에 있다. 생태적 조화 아래 비로소 개별 인간과 가족·집단의 삶도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