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간'에도 환경을 생각한 조상들의 지혜 숨어 있네 ㅣ 2004-10-02 ㅣ [조선일보]


 이 책은 사라지고 잊혀져 가고 있는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발굴하여 여기에 숨겨져 있는 삶의 지혜와 생태학적 원리를 탐구하려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시도이다. 엮은이의 원론적인 지향점은 생태학이지만 목차를 들여다보면 똥간·풍수·굿과 같은 도발적인 주제들이 중간 중간 박혀 있고, ‘생태도시 한양’ ‘옛 시조의 녹색사상’ ‘겸재 정선의 생태미학’과 같이 현대의 생태학적 의제와 전통적 개념이 조합된 퓨전(fusion)형 주제를 담고 있어 호기심을 갖게 된다.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이 편안하고 만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왜냐하면 주제마다 학자들이 2~3년간의 세미나 발표와 토론을 거치면서 걸러진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서평자도 참석했던 이 세미나는 워낙 광범위한 주제를 대상으로 전통과 생태를 넘나들다 보니, 전문가조차도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그 맥락을 찾아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 세미나는 풍수로 시작해서 똥간으로 끝나는 우리네 삶의 많은 이야기들이 전통생태라는 한 주제로 엮어지면서, 한국의 전통적 지혜가 환경 위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대사회에 대한 생태학적 해법과 관련되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물을 묶은 이 책이 아직 완결판은 아니지만 전통이나 환경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이 새롭게 관심을 가질 만한 중요한 주제들을 집대성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전통적 주제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현대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아이디어들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이도원 교수는 우리의 전형적 농촌 경관을 ‘배산임수(背山臨水), 문전옥답(門前沃畓)과 띠 모양의 마을숲’이라는 풍수적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이 숲이 가지고 있는 침식 방지 및 야생 동물 서식 공간으로의 기능에 대한 예리한 관찰을 하고 있다. 이러한 관찰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연형 하천 계획 등에서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포인트인 것이다. 그리고 윤홍기 교수는 전라북도 선창리의 행주형(行舟形·배가 둥둥 떠가는 모양) 형국을 사례로 들면서 풍수지리 형국의 형태와 크기는 그 마을의 호수의 한계를 나타내며 이는 환경개발의 한계(수용력)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원리는 생태도시 계획이나 생태단지 계획시에 개발 밀도와 인구 규모를 설정하는 데 도입할 만하다. 그리고 김재일 소장은 송광사와 선암사의 똥간 구조, 특징과 관리 실태 등을 소개하면서 이것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 자원으로의 순환성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이러한 원리는 생태마을 계획에서의 주택설계 등에서 그 원리를 응용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책의 편집 의도가 전통과 생태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를 집대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각 부문마다의 실천성이나 시의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생태학적 연계성에 대한 검토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전통과 생태에 관한 접합이 성공하려면 이제 담론 수준의 전통생태론에서 명실상부한 전통생태학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한국 땅에 살아온 우리들의 기억과 경험 속에 점차 잊히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얼마나 총명했고 지혜롭고 소중했던 것인지 새롭게 알고, 이를 자신의 일상 생활과 전문 영역 속에서 실천하고 응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기 바란다.


다시 한 번 논어의 이야기를 되새겨 본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과거의 지혜를 소중히 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능히 시대를 이끄는 스승이 될 만하다[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