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서 열리는 최초 미술전 ㅣ 남상현 기자 ㅣ 2005-9-4 ㅣ [대전일보]

르네상스 시대까지만해도 건축과 미술은 하나였다. 미술관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세우고 그 곳에 미술품을 전시해 관객과 작품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시도는 인류 역사를 비춰볼 때 불과 최근의 일인 셈이다. 건축과 미술이 작품으로서 동등한 위치에 선보이는 전시가 대전에서 열린다. 대전시립미술관과 ATA(아시아건축연구실)가 23일부터 11월 20일까지 대전의 대표적 근대건축인 대전지방보훈청 별관(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등록문화재 제100호)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는 '광복 60주년 기념 열린미술관'이다. 문화재청의 근대건축물 기록화 사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추진된 이 전시는 공공건물, 그 중에서도 등록문화재 자체는 물론 공간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한 최초의 경우로 기록될 전망이다. 또 지금까지 경제적 논리에서 시도한 원도심의 문제를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라는 평가다.

▲근대언어에 충실한 건축 조형

전시가 열리는 대전지방보훈청 별관은 대전건축사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 이 건물은 대전 제1세대 건축가로 1939년 말 대전에서는 최초로 개인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 배한구씨(1917-)의 작품. 1959년 건립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으로 전후 농산물에 대한 품질관리를 했던 곳이지만 관리원의 선화동 검찰청사 이전과 동시에 대전지방보훈청 별관이 됐다. 그러나 6년여간 용처를 찾지 못한 채 빈상태로 있었던 것. 이 곳의 가장 큰 특징은 근대건축의 언어를 고스란히 실행했다는 점이다. 1층은 2개 공간으로 구분돼 있으며 업무를 위한 사무공간과 숙직실 등 지원 공간으로 나뉜다. 또 업무공간은 기둥을 세우지 않고 설계, 구체적 용도를 설정하지 않고 보편성을 살린 근대건축의 지향점을 충실히 반영했다.

사무실 채광으로는 부적절한 서향 햇빛을 조절하기 위해 루버(louver 채광·일조조정·통풍 등의 목적으로 폭이 좁은 판을 비스듬히 일정 간격을 두고 수평으로 배열한 것)를 정교하게 설치했다. 또 건물 재료로는 시멘트와 인조석 물갈기 등 근대적 재료가 사용됐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방치됐던 건물 전체에 전기 설비 등 부분적 시설 보강이 이뤄졌다.

▲건물의 특성 살린 작품 설치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 추진해 온 '열린 미술관'의 일환으로 개최된다. 대전지역 중견작가 7인의 대표작이 전시되며 이들 작품은 일관되게 건물과의 조화에 초점을 맞췄다. 등록문화재의 특성상 외관의 변형은 전혀 없지만 주공간을 기둥을 세우지 않는 설계여서 전시 공간으로서는 일단 합격점을 차지했다.

전시는 건물내 작품설치와 외벽 영상 레이저 쇼 등 크게 구분된다. 참여작가는 도시형 인간의 얼굴을 판화로 제작한 정장직 우송대교수, 충남도청사와 대전역 사이의 풍경을 미니어처로 제작한 이상봉, 솜을 이용해 과거의 따뜻한 추억을 살려낸 권종환이다. 또 이동석은 건물 공간을 이용한 꽃작품을 내놓았고 유재중은 철로 제작한 작품을 창문에 설치, 그림자의 효과를 최대로 살렸다. 근대 건축물에 대한 기록작업에 천착해 온 전재홍씨는 근대문화재를 대형 사진작품으로 선보인다. 또 유동조씨는 외벽 영상 레이저쇼 'BETWEEN'을 통해 불과 물, 근대건축물과 현대인과의 관계를 고찰했다.

김민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사는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과 원도심 중심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주목해 기획된 열린미술관의 일환"이라며 "건축물의 상징적 의미와 그 건물이 만들어내는 공간과 어우러지는 작품으로 꾸몄다"고 밝혔다.

▲원도심 문제 해결의 획기적 접근

이번 전시는 현대 도시가 겪고 있는 원도심과 신도심 문제를 문화적,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근대건축물은 구조적, 설비측면에서 활용가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된 해는 지난 2002년. 제도 시행 이전에는 이들 근대 건물들은 일제잔재라는 미명 하에 무차별적으로 철거됐다. 건물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상징적 의미는 일찍이 고려된 바 없던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일종의 실험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여러 기관이 협력해야 했다. 대전지방보훈청을 비롯해 공동주최처인 시립미술관과 아시아건축연구실을 비롯 전시에 뜻을 모은 지역의 유수 건축사무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한필원 한남대 교수(건축학부)는 "불과 50여년밖에 되지 않은 근대건축물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며 "원도심 문제 해결에 또다른 사고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뜻깊은 전시가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