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포스트모더니즘; 실종된 현대건축의 사조와 그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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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modernism in Architecture; A Trend of Contemporary Architecture, Missing

<사진 1> Vanna Venturi House, 설계 로버트 벤추리, 펜실베니아, 1961

벤추리가 어머니를 위해 설계한 이 주택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시작한 건물로 일컬어진다. 삼각형의 박공벽을 통해 건축이 역사적 준거를 가져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1980년대 한국 건축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열병을 앓았다. 건축가들은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관찰하였고 연구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문을 써댔으며 건축잡지도 그러한 건축에 대한 논의와 소개로 채워졌다. 그러나 그 열병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미 실종신고를 치른 포스트모던 건축은 오늘날 우리의 기억 속에서조차 가물거리는 지난 시절의 유행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요절한 포스트모던 건축을 반추해보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현재 뚜렷한 논제가 없이 차분한 자기성찰의 시기를 맞은 우리 건축계의 상황은 그 포스트모더니즘 열병과 어떻게 관련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구하기 위하여 이 글에서는 포스트모던 건축의 일반적 경향과 한계,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고찰하여 본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무엇인가?

1950년대 말, 근대건축운동의 핵심적 추진체이었던 C.I.A.M.(Congre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이 붕괴한 후 현대건축의 사조는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의 관점에 따르면, 그것은 근대건축의 합리적 해결방식을 받아들여 현대의 기술과 함께 극도로 발전시킴으로써 새로운 하이테크 미학을 창조하려는 후기 근대주의(Late Modernism)와 근대건축이 간과하여온 형태의미론적 측면과 지역문화와의 연속성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역사와 전통을 참조하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탈근대주의(Post-modernism)로 구분된다. 건축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처음 사용한 젠크스는 후자를 '건축을 언어로 간주하고 그 의사전달의 정도를 높이기 위하여 엘리트 코드(elite code)와 대중 코드(popular code)를 모두 사용하여 건물을 이중 코드화(dual coding)하려는 건축'이라고 정의한다.

 
 

<사진 2> Stuttgart Museum, 설계 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 스투트가르트, 1984

수준 높은 포스트모던 건축으로 꼽히는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조형요소가 잘 통합되어 있으며, 가로변의 경사지에 위치한 대지의 특성, 구 건물과의 관계 등 도시적 맥락이 훌륭하게 반영되어 있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1960년대에 싹을 보였고 1970년대에 많은 관심을 모았으며 1980년대에는 우리 건축계를 풍미하였다. 근대건축이 전후(戰後)의 기계산업사회를 배경으로 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 하는 대중소비사회인 후기산업사회의 시대상황에서 태동되었다. 이러한 새 시대에 필요한 건축은 대중문화와 유리된 독선적인 건축이기보다 대중문화를 인정하고 대중과 가까워지는 건축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축가 진영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건축가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건축에서 대중이 관찰하고 이해하는 건축으로 건축을 하는 태도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과장되고, 상징적이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처리된 가로 입면(facade)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이 때, 근대건축이 추구한 단순성과 순수성의 허구를 지적하면서 역사성과 문화가 반영된 복합성과 다양성을 내포한 건축이 새로운 시대의 건축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로버트 벤추리(Robert Venturi)의 저서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1966)'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에게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건축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로버트 벤추리, 찰스 무어(Charles W. Moore),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 등 대중문화를 반영하는 대중주의(Populism)건축을 시도하는 미국의 신현실주의(Neo-Realism)와 알도 로시(Aldo Rossi), 레온 크리어(Leon Krier)처럼 기존 도시에서 건축 유형(typology)을 추출해 건축에 적용함으로써 기존도시의 맥락(context)을 중시하는 신합리주의(Neo-Rationalism)를 주축으로 전개되었다. 이들의 시도는 다양하게 나타났으나 그 속에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공통적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 3> 전주시청사, 설계 김기웅, 1981

포스트모던 건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시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직설적으로 전통건축을 차용하였다.

첫째, 그들은 근대건축에서 무시되어 온 형태의 의미와 문화적 상징성의 회복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역사와 전통적 형태를 참조함으로써 그것이 지닌 이미지, 기억, 연상 등을 중요한 조형개념으로 활용한다. 그들은 형태의 의미회복을 위한 개념상의 기초로 건축을 언어처럼 의미를 전달하는 체계로 보는 견해를 깔고 있다. 둘째, 공간과 형태 구성의 수법으로 레이어링(layering), 수퍼그래픽(supergraphic), 병치(superimposition) 등을 사용하여 공간의 다의성(Oyeuao, ambiguity)을 높이려 한다. 셋째, 도시환경의 생태적 위기와 단조로움, 장소성의 상실을 해결하기 위하여 건물이 위치하는 도시의 환경 및 문화, 역사적 맥락을 중시한다. 그들은 근대건축의 오브제 지향성을 피하고 물리적, 문화적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토착적 형태나 전통에서 참조의 유형을 구한다.

 

 

 

 

 

포스트모던 건축의 한계에 대하여

이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도시문제에 대한 착상 등 개념의 전환과 새로운 건축에 대한 설득력있는 접근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포스트모던 건축은 높이 날아오르기도 전에 추락하고 말았다. 이 글에서는 그 추락의 원인을 이론의 취약성이라는 내적인 한계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근대건축을 이런저런 각도에서 비판했으나 새로운 건축이 가야 할 뚜렷한 방향성, 곧 정립된 이론과 미학을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비판을 넘어 생성의 이론으로 정립되지 못한 포스트모던 건축이 한 시대를 이끌어갈 사조로 자리잡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역사적 형태를 참조하는 방식이란 상당히 포섭적이고 절충적이어서 다양하나 그 참조의 양상이 단편적인 꼴라쥬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어떤 미학적 원리에 의한 통합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앞서 언급한 공간의 다의성을 위한 수법들도 개념상의 시험을 위한 매너리즘(mannerism)적 방법에 의존하고 있으며 구조, 기능, 공간, 형태 등의 상관성에서 나온 논리적 과정에 이르지 못하였다. 공간과 구조, 기능의 창조적 해결에 대한 관심이 미흡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특히 고전주의의 건축요소를 참조하곤 하였으나, 고전주의적 재료의 특성을 현대의 기술로 재생하는 것은 시대성을 갖지 못하는 태도에 불과했다. 그들은 도시를 구성하는 접근개념에 있어서도 단지 형태적 유형에 의한 이미지와 연상 등을 통한 문화적 연속성을 강조하는 한계를 보인다. 그들은 미학적인 측면에만 몰두함으로써 건축과 도시가 갖는 사회학적인 측면을 망각하였던 것이다. 이는 새로운 건축을 통하여 당시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던 근대건축가들의 이상주의적 입장과 비교된다.

 

 

 

 

<사진 4> 수졸당, 설계 승효상, 1993

주택의 본질과 전통성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한 건축작품으로서, 오늘날 우리 건축가들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흥미롭게도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선구자로 인식되는 로버트 벤추리는 자신이 포스트모더니스트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는 1990년 한국의 신라호텔 강연장에서 '나는 어떤 한 스타일로 규정되는 것을 싫어한다. 베르니니(Bernini)도 자신이 바로크양식에 속하는 것을 몰랐다.'고 꽁무니를 뺐다. 그 때 우리는,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하는 한 건축가의 철학에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신념이나 주의가 아닌 가벼운 유행으로 추락해가는 포스트모던 건축의 슬픈 처지를 일찌감치 엿보았다.

우리는 포스트모던 건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포스트모더니즘은 1980년대 우리 건축계에 두 가지의 부류를 만들어내었다. 하나는 포스트모더니즘조차 수입하는 부류이다. '두손갤러리(동숭동)'와 '앙스모드' 같은 건물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하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에 입각해서(?) 한국 전통건축을 무차별로 인용하는 경향이다. 여기에는 '전주시청사'와 '독립기념관' 같은 건물이 속한다. 좋든 싫든 그것들은 바람직한 도시건축과 건축의 전통성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이끌어낸 바탕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분명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지만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에 뿌리를 두고 진화한 사조이다. 역사에서 단절이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포스트모던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더니즘 건축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건축가들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이나 노력이 없었다. 그런 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우리의 땅에 옮기다보니 엉뚱하고 기이한 작품만 낳게 되었다. 지역 환경에 대한 고려가 없이 단편적으로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참조하여 나타난 건축의 이미지는 우리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탈근대 건축이 그 사회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재인식으로부터 출발하였다고 믿고 형태언어를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차용한 경우도 성공적이지는 못하였다. 오늘날 전통건축의 직설적 인용과 복고적 재현을 전통의 계승이나 재창조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의 역사적 준거를 정리하지 못한 채 우리의 포스트모던 건축을 만들려는 시도는 전통성에 대한 논란만을 낳았다.

포스트모던 건축이 남긴 것

미국 상업주의의 침공과도 같이 우리를 강타한 포스트모던 건축은 우리에게 아픈 상처와 교훈을 남겼다. 한 나라 또는 문화권을 토대로 형성된 사조를 부분적으로라도 '그대로' 우리 토양에 도입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한 만큼 대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남긴 여파는 우리 건축계에서 진지한 자기반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지역성과 전통, 그리고 도시환경에 대한 탐구로 요약된다. 도시환경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중시하여야 함을 인식하게 된 건축가들은 한결 신중한 태도를 갖게 되었고 전통의 본질을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틈만 나면 전통건축을 찾아 헤매는 새로운 버릇을 갖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건축을 건물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도시를 염두에 두게 되었다. 건물의 기능적, 미학적 수준을 확보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그것이 도시환경에 기여하여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환경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훌륭한 전통을 가진 우리가 뒤늦게나마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한 것은 다행이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건축계의 저변에는 건축의 보편적인 질을 확보하면서 우리건축의 아이덴티티를 탐색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우리의 경관은 어떠한가,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 질서로 움직이고 있는가, 우리는 어떠한 전통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그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우리건축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찾아내는 데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은 나름의 기여를 한 것이다.

 

 

 

 

 

 

 

 

 

 

 

 

 

 

참고문헌

길성호, 포스트모던 건축의 공통적 특성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석사학위논문, 1985

'특집 Robert Venturi', 플러스 40호, 1990. 8

'80년대 한국건축의 다원적 擬似 검증', 플러스 32호, 1989.12

'80년대 한국건축의 쟁점과 과제', 꾸밈 81호, 198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