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서 평론집, 동양적인 것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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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방식이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유일한 길이고 그것만이 인간존재에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W. L. Idema

언제 우리는 이 말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동양은 서양보다도 더 멀었다. 남보다 더 먼 나...... 동양은 옛날 이야기 속에서나 전해지는 아스라한 환영 같은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우리에게 그것은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 갑작스런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다음 세기에는 지구의 무게중심이 아시아로 옮겨오리란 기대 섞인 전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일찌감치 영화나 대중문화에서 동양은 뜨거워지고 있다. 바야흐로 동양으로 돈벌이가 되는 세상이 도래하는 듯하다.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에도 '동양적' 소재가 쓰이는 것을 보면 그러한 예상은 자못 믿을 만하다.

그러나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아시아에 대한 작금의 관심은 서양의 그것에 기인함을 알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가 사용가능한 지적 무기란 서양의 근대적 지성의 소산임에야. 정재서 교수의 평론집 '동양적인 것의 슬픔'은 이러한 시대적 조건에서 마음에 와 닿는 읽을 거리이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I. 동양, 글쓰기와 차이'에서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지배구조 곧 오리엔탈리즘을 해부한다. 'II. 서사와 이데올로기'에서는 중국의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문화적 우월의식을 또하나의 오리엔탈리즘으로 규정하고, 그 허구적 관념을 비판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III. 새롭게 길어오는 고전의 힘'에서는 번역의 문제와 현실적 대안을 논한다.

저자는 시종 광범위한 문헌들을 인용하면서 일관된 논리를 전개해간다. 이 책을 읽으면 그것이 결국 동양의 고전에서 새로운 힘의 불씨를 발견하려는 안스러운 노력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 노력은 우리가 무심코 방치해온 곳에서 뜻밖의 불씨를 지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선한 시각을 열어준다. 제1부의 '대중문학의 전통적 동기'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보면 그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에 이미 존재하는 자산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다는 반가운 가능성이다.

저자는 주로 중국문학, 또는 중국학을 이야기하지만 독자는 동양적 사유와 창조에 관한 어떤 문화예술 분야로 이야기를 이어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을 건축이라는 특정분야를 배경으로 읽어보아도 저자의 논지는 무리 없이 전해온다. 아직은 아시아의 건축에 대한 연구가 미미하지만 앞으로 활발히 전개되리라는 가정을 하며, 우리의 연구가 지향할 방향성을 미리 설정해보는 데에 이 책은 도움이 된다.

제1부에 논의된 오리엔탈리즘의 지배구조를 읽으며 그것은 문학뿐 아니라 건축이라는 다리를 통해 우리의 삶의 양식에 침투되었음을 직감해본다. 또한, 논어와 같은 중국의 고전이 김수영의 시로 각색될 수 있었듯이 '아시아 건축의 전통이 현대건축으로 갱신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다시금 해본다. 그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서양근대의 자민족중심적 사고체계 속에서 태동한 '건축'에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건축에서 '근대'의 문제는 그래서 좀체로 풀리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이 책은 서구에 '침윤된'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제2부에서는 중국의 문학과 마찬가지로 중국건축도 다원적 문화론의 입장에서 다체계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건축과 한국건축의 대위법적인 비교는 오류로 이어질 염려가 많음을 인식하게 된다.

중국도 알고 아시아도 알자. 이것은 억지같은 방어기제를 개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적 보편성에 기초한 우리의 이론과 실천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전통건축에 관한 기본서들조차 구경하기 힘든 오늘의 현실에서 그러한 이론과 실천은 아직 머나먼 길이다. 번역의 문제를 다룬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건축계의 현실에 그대로 인용될 수 있다. 번역서가 턱없이 부족하여 할 수 없이 되지도 않는 외국어 공부에 막대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안타까운 건축계의 현실. 이 책은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가?' 라는 반복되는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금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