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시에서는 사람들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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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원 / 0106

 

직업상 국내외의 많은 도시들을 답사하면서 깨달은 것은, 아름다운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심성도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그 아름다운 도시들엔 한결같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의 짧은 조우는 언제나 내게 긴 여운을 남겼다. 중국의 수저우에서, 일본의 구라시끼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마을들에서 그랬다.

또 한 가지. 아름다운 공간에서는 힘든 일조차 재미있게 느껴지는 듯하다. 수년 전에 핀란드의 작은 도시인 세이내찰로의 시청사에 갔었다. 거장 건축가인 알바르 아알또가 설계한 그 건물 안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시립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책장 앞에 서서 조용히 책을 찾는 어린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가 갑자기 나의 아이로 바뀌어 보이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그 자리를 떴다. 건물을 나서는 내 마음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놀러가곤(?) 했던 집 근처의 구립 도서관이 떠올랐다. 마음 속의 구립 도서관에도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밝지 않아 집 떠난 이의 적적함만 더할 뿐이었다.

대전 사람들은 마음이 좋다고들 한다. 나도 대전시민이니 이 말을 들을 때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눈을 들어 식장산과 계족산을 바라보며 마음의 여유를 찾고, 옥류각 뒷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기른 사람들, 또 남간정사의 연못가에서 슬픔과 분노를 다스린 사람들이 어찌 착하지 않으랴? 그러나, 최근 대전이 변모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까지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을지 염려된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어준 장소들이 초라해지거나 자취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요즘 도시개발계획이 발표되고 도로가 시원하게 뚫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출처 모를 우울함에 휩싸인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란 추억 지우기가 아닌 것을...... 남간정사 옆의 소림사 무술도장 같은 우암사적공원, 햇볕이 쨍쨍 쬐는 동춘당공원, 또 중앙로의 한일은행 건물은 모두 잘못된 도시개발에 바쳐진 불필요한 제물이었다. 이제는 도시의 추억과 아름다움을 해치는 거친 손길을 거두어야 할 때이다.

추억이 없는 도시는 아름답지 않다. 아니, 애틋한 추억도 없는 그를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