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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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는 최후의 본질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사물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가는 당신이 그것을 어떠한 참조체계에 끌어들이느냐에 달린 것이다.

 

최근 중국 대륙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여 국제 경제질서에 편입되었다. 또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마지막 그림자인 마카오가 본래의 아오먼(澳門)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동서의 대립구조는 점차 사라지고 있고, 앞으로 동서의 구분은 더욱 모호해질 듯하다. 지난 한 세기를 풍미한 서양중심 역사의 쓸쓸함을 뒤로하고 동양의 새 봄에 대한 기대가 일어나고 있는 새해 아침이다.

오늘 배달된 신문에는 중국의 문화와 시장성을 내세워 우리의 구미를 돋구는 기사가 실려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입맛이 중국 또는 중국문화권을 이해하는 소화력으로 나타나기에는 아직 먼 듯하다. 저녁의 TV(EBS)에서는 잘 알려진 김용옥선생이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의를 진행한다. 재미있다. 강사의 말재주 때문이라기보다 내용이 새롭기 때문이겠다. 왜 우리에게 동양의 중국, 그 문화와 사상이 새롭기까지 한 것일까?

사실 우리에게 지난 한 세기는 '자신을 지워나간 시간'이었다. 하지만, 삭제된 파일을 어렵사리 복구하듯이, 스스로를 기억에서 살려내는 쑥스런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동서의 경계가 붕괴되는 시점에 선 우리 모습이다. 중국 런민(人民)대학 철학과 교수로 있는 장파(張法)'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을 읽는 것은, 특히 미학과 관련되는 일에 종사해온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쑥스러운 일의 하나일 것이다. 중국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를 이해하는 일의 중요한 일부가 될 것이므로, 그것은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 하지 않으면 안돼는 일이기도 하다.

모두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전체적으로 볼 때, 중국과 서양의 미학을 양팔 저울의 양쪽에 올려놓고 균형있게 대비시켜 다루고 있다. 1~5장은 동일한 또는 유사한 개념에 대해서 중국과 서양에서 미학개념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를 다룬다. 6~12장은 중국과 서양에서 전개된 대비되는 미학개념들의 짝을 몇 개의 범주로 묶어서 비교론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비추는 두 거울을 찾아서'라는 번역서의 부제에도 암시되었듯이, 이 책은 중국의 주(周)와 서구의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문화적으로 태동ㆍ전개되어온 미학개념들을 서로 상대에게 비추어 부각시키고 있다.

저자는 미학을 우주론과 연계하여 고찰한다. 그는 미학의 태동과 역사적 전개라는 방대한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선정된 개념들을 비교론적 관점에 따라 차례로 서술함으로써 매우 일목요연하게 논하고 있다. 이러한 서구와 중국의 대비적 서술에는 '혁신''보존'이라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다소 도식적 관점이 깔려있는 듯하지만, 서로를 부각시키는 '비교'의 미덕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서구에 대해서는 고대, 근대, 현대로 시기를 나누어 이전 이론과 대립하는 새 이론의 전개, '부정 ---> 전진'의 변증법적인 전개과정에 주목하였다. 중국에 대해서는 유파의 차이에 유의하면서도 하나의 개념이 역사적으로 유지, 심화되는 과정을 중시하였다. 이 책에서 우리는 유가와 도가 철학을 바탕으로 전개된 중국 미학의 일관된 흐름을 꿰어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국의 다양한 고전은 물론 서양건축사 문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문헌을 참조하면서 미학 이론의 역사적 전개를 거시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중국 문화에서 우주의 형(形)과 기(氣)를 파악하는 문심조룡(文心雕龍)의 기본방식을 이해하게 되며, 맹자의 미학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미학에 대한 동서양의 역사적 성과를 잘 갈무리한 이 책을 읽는 데는 동서고금의 중요한 미학문헌들을 차례로 맛보는 즐거움이 더해진다. 

비록 건축이 심도있게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책은 동서양 건축미학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세로도 일독할 가치가 있다. 건축은 미학적 대상인가? 그렇다고 할 때 동서양의 건축에 적용되어온 미학은 어떠한 성격이었는가? 이 책은 여기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를 도와준다.

저자는 공간적 화해(和諧), 곧 조화(調和)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예술로 건축을 꼽는다. 그리고 고도의 개체적 완벽성이 아니라 집단성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 건축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성과 풍부한 공간성에 관련하여 건축에 내포된 '시간'의 요소를 논한다. 논의는 좀더 구체적으로도 진행된다. 누대(樓臺)에 포함된 '숭고'의 미학을 고딕성당의 그것과 대비하여 자세히 설명한 다음과 같은 부분은 중국건축을 미학적으로 해석하는 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에 올라 천문을 관찰하는(臨臺以觀天文) 것은 하늘의 상(象)을 보고 그 의도를 파악하여 신과 교감하기 위해서이다. 처음에 누대가 숭고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은 그것이 제사에 쓰이고 신이나 하늘과 교감하는 신성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것이 제왕의 누대로 변하면서는 천명을 받아 백성을 다스렸던 제왕들의 위대성으로 인해 숭고하게 여겨졌다. 이후에는 위진 시대의 문인들이 산수 유람을 즐기며 명산 대천에 정자.누대.누각 등을 짓는 풍습이 발전하면서 누대에 오르는 것이 일반인의 미적 풍습이 되었다. 이로써 누대에 오르는 것도 중국인의 우주적 인생관은 촉발하는 보편적 방식이 되었다. 고딕 성당의 숭고함은 밑에서 위를 바라보는 것이어서, 그 기둥.창문.첨탑 등 전체적 외형이 속세를 초월하는 종교적 숭고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누대의 숭고함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누대에 올라 우러러 우주의 위대함을 살피고 아래로 만물의 번영을 관찰함으로써 사방을 멀리 조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고대 중국인이 우주와 인생의 숭고함을 느끼게 한 숭고이다. 위아래를 모두 관찰하고 멀리 사방을 바라볼 수 있는 누대의 숭고는 인간의 자연.우주의 교류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 미학을 가장 심오하게 구현한 것이다." 

예술을 하는 기본적 자세와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 책의 뒷부분에서는 이같은 이른바 '작가정신'의 문제가 다루어진다. 중국에서 건축은 물론, 시와 그림 등의 예술이 갖는 의미는 작가 개인 자체보다는 그가 형성하는 사회적(유가 미학의 경우), 자연적(도가 미학의 경우) 관계 속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유가·도가의 상호 보완 또는 대립으로 중국미학이 전개되었듯이 예술의 의미에 있어서도 두 측면이 보완 또는 대립될 수 있다. 아름답게 채색하고 아로새긴 농염한 아름다움의 궁전 건축과 갓 피어난 연꽃의 충담한 아름다움을 가진 왕희지의 글씨 또는 도연명의 시가 모두 중국에 존재하는 이유는 이같은 배경 속에서 이해된다. 이 책을 읽으며, 건축을 작가 자신의 소유물인양 매달리는 작금의 우리 모습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건축을 공부하는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한가지 직접적인 소득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동양적 미학개념을 좀더 정확하고 폭넓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채워있는 것에 비해서 '그냥 공간적으로 비어있는 것', 영어로는 void라고 모호하게 전달되곤 하는 '(虛)'의 문제에 대해서도 좀더 넓고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虛)는 진실보다도 더 진실하며, (道)는 허로 모여들고(唯道集虛), 허공이 없으면 만물은 생겨나지 않는다.'고 한다. 허를 적극적인 생성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내용과 실질을 중시하고 외양과 꾸밈을 멀리하는 '성리학적 미학'은 근래 우리 건축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면 그러한 미학의 뿌리는 어디일까? 저자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새로운 미학개념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것이 기원전의 한비자(韓非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요컨대, 이 책은 우리를 미학적 사고의 정리와 확장으로 이끌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