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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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has happened to this village over last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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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원터마을의 전경

원터마을은 필자가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가끔 찾는 마을들 중의 하나이다. 이 마을을 처음 방문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88년 7월 27일, 그 해 서울대학교 이광노 교수님의 무애건축연구실에서 조사연구할 대상지를 선정하기 위한 답사 때였다. 그 후로도 필자는 혼자 또는 국내외의 연구자들과 몇 차례 이 마을에 다녀갔다. 그러나 이 글을 위해 다시 한 번 마을로 향한 이번만큼 여러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지난 10년이라는 시간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에 이 마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원터마을은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며, 조상에 대한 성리학적 자부심을 가진 씨족마을이다. 그러나, 안동의 양동마을이나 하회마을처럼,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진 인물을 배출한 마을도, 특별히 격식을 갖춘 한옥들로 구성된 마을도 아니다. 이렇게 특별한 관심을 끄는 마을이 아니기에 이 마을에는 마을공간을 보존하여 남에게 내보이려는 어떠한 과욕도 없었다. 현실의 필요와 삶의 논리에 따라 충실히 공간을 형성하고 변경해온, 전통의 왜곡도 단절도 없는 건강한 마을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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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작은 종가의 안채. 한국전쟁 이래로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가장 격식을 갖춘 주택이다.

이 마을은 연안(延安) 이씨(李氏) 부사공파(副使公派) 일가가 형성한 마을로 1510년경 자리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이 마을은, 아름다운 정자인 방초정(芳草亭)을 떠내려보낸 경종(景宗) 3년(1723년)의 홍수로부터 작은 종가의 사랑채를 불태운 근래의 화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의 자연재해를 겪었다. 또한, 종가를 비롯해 마을주택의 상당수를 파괴한 1950년대의 한국전쟁과 뒤이은 재건사업 그리고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 등 인위적인 변화의 계기도 거쳤다. 1980년대부터는 이 마을에도 도시의 영향이 커갔고, 1995년에 마을이 김천시로 편입됨에 따라 급기야 도시화의 직통선을 놓게 되었다. 한 마디로 원터마을은 우리 농촌사회의 역사적 사건들을 두루 겪으면서 현실적인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반영해온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마을은 지극히 어려운 지역 환경 속에서도 건강한 농촌마을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농업을 유지하는 젊은이들이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고, 약간 인구가 감소하고는 있지만 사람이 사는 마을로서의 활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10년 만에 이 마을을 찾아 10년 전에 작성한 마을 배치도를 수정하였다. 이 작업을 통해, 그간 58호의 주택 중 14호가 크게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의 네 집에 한 집 꼴로 새로운 유형의 집을 지었거나 기존 주택의 일부 또는 전부를 철거하였으니 마을 전체가 적지 않은 변화를 겪은 셈이다. 그렇게 변한 집들에 들어가보면 그것이 10년 전에 있었던 집들과 외양이나 공간구성에서 어떠한 관련성도 갖고 있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10년 만에 다시 본 마을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안에는 변하지 않은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안길이 확장되기는 했어도 마을 길의 구성에는 별 변화가 없다. 마을 전면(前面)에 버티고 서있는 방초정과 열녀비각 그리고 마을 뒤쪽의 재실(永慕齋) 등과 같이 이 마을을 상징하는 건물들도 어떠한 변화 없이 매우 잘 유지관리되고 있다. 마을의 골격을 이루는 공간구조에는 별다른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지속성은 마을의 이미지를 유지시키는 힘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여기서, 자생적으로 움직여온 마을에는 '개체의 변화와 구조의 지속성'이라는 명제가 적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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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방초정 2.열녀비각 3.연못 4.마을회관 5.종가 6.소종가 7.영모재

<그림 1> 마을의 배치도
(왼쪽은 10년 전의 배치도이고 오른쪽이 현재의 배치도임. 배치도는 '무애건축연구실, 경북 금릉 농촌주거 실측조사 보고서, 1988. 10'을 바탕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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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원터마을의 지형 모형. 왼쪽이 남쪽이며, 북쪽과 서쪽으로 높은 지형이 감싸고 있다.

원터마을에서 떠올리게 되는 생각 중의 하나는 주거의 영역성 문제이다. 우리의 전통마을이 대개 그렇지만, 원터마을은 강한 영역성을 가지고 있다. 영역성은 경계와 입구를 규정하는 방식에 의해 표출되는데, 이 마을에서는 그러한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일차적으로, 마을영역을 삼면에서 둘러싸는 산의 능선이 자연스럽게 마을의 경계를 규정한다. 또한 마을영역의 경계지점으로 인식되는 곳에는 대나무, 백일홍나무 등으로 독특한 조경처리를 하여 영역의 전이(轉移)를 뚜렷이 하고 있다. 특히 마을 후면이나 측면의 지형과 조경은 영역성을 확인시켜주는 환경심리적 요소이면서 주거지 후면에서 불어오는 겨울철 계절풍을 막아주는 환경조절 기능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마을영역이 답답하게 닫히는 것은 아니다. 마을의 전면(前面)에 있는 방초정은 사회적 성격의 마을 중심시설로 비록 그 뒤쪽의 주거지에서 접근되어 이용되는 것이지만 마을의 전면을 향하며 배치되었다. 그리고 방초정의 모퉁이에는 주변의 경관을 읊은 시구를 적어놓은 현판이 걸려있는데, 이는 마을영역과 외부 자연환경의 시각적 연결이 중요하게 고려되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서 마을의 거주영역이 마을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시각적 또는 심리적으로 주변의 경관으로까지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전통마을의 시설들이 마을공간만이 아니라 마을 주변의 광역적 자연환경을 살펴서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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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종가 뒤편의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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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마을 측면경계의 백일홍나무군. 마을 안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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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방초정에서 본 연못과 마을 전면의 경관

원터의 마을영역은 다시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세부 영역으로 구분된다. 마을 입구로부터 후면으로 가면서 사회적 영역, 개인적 영역, 의식(儀式), 또는 정신적 영역이 펼쳐진다. 여기서 사회적 영역은 주로 남자들의 활동공간이며 방초정과 그 앞의 연못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특히 방초정은 마을의 중심시설로, 마을공간과 외부가 만나는 지점을 형성하며 동시에 마을공간의 어디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근래에 지어진 마을의 상점이 이 영역에 지어진 것도 그것이 이러한 사회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영역 안쪽에서 시작하여 종가에 이르는 개인적 영역은 주택(민가)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가족을 중심으로 활동이 일어나는 영역이다. 의식영역은 재실, 사당, 선산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정신적인 영역으로 마을의 최후면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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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마을 전면의 사회적 영역

 

 

 

세 영역 중 개인적 영역은 계속 변화해가고 있지만 나머지 두 영역은 사실상 거의 변화가 없이 유지관리되고 있다. 단지, 필자가 이 마을을 답사하기 직전에 완공된 마을회관이 마을의 안쪽 안길 가에 배치되어 사회적 영역이 안길을 따라 확산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원터마을의 영역성에 있어서 이러한 변화와 지속은 어떤 개인이나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결과가 아니고 문중을 중심으로 결속된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필자는 원터마을을 몇 차례 조사연구하면서 여러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공동체적 생활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환경친화적 주거지의 특성을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다.
현대 주거단지에서 가장 취약한 점 중의 하나는 공동사회의 결속을 조장하는 공간체계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생활은 가족 중심의 개별적인 생활에 그칠 뿐 공동체적 활동은 매우 제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인간의 소외현상도 심화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측면에서 원터마을의 공간조직은 큰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개별 주택에서 마을입구로 연결되는 과정에 마을의 대표적인 사회시설인 정자를 거치도록 길의 체계가 구성되어서 거주자들은 자연스럽고 빈번하게 서로 접촉하게 된다. 이것은 마을을 하나의 공동체로 유지하는 물리적인 장치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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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마을 내부에서 본 방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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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방초정에서 본 마을의 주거지

전통마을은 주민들이 거주와 산업(농업)을 위해서 제한된 자원, 에너지 그리고 기술을 가지고 부단히 주거환경을 조절하여 온 결과가 축적된 주거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환경생태학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나 기본적으로 환경생태적인 합리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원터마을의 지형의 환경적 의미, 선형(線形) 녹지가 갖는 방풍림으로서의 미기후 조절 기능 등을 살펴봄으로써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우수(雨水)와 생활하수가 마을공간에서 순환되는 과정은 놀라운 환경계획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원터마을에 있는 대부분의 주택에서 나오는 생활하수는 자연경사를 따라 조성된 하수로를 통하여 방초정 앞의 연못에 모아지는데, 이 때 수로에서 고형물이 일부 걸러진다. 연못은 경관요소로서의 역할 이외에, 마을 내부적으로 생활하수와 우수의 정화지(淨化池) 기능을 한다. 연못에서 침전과 생물학적 작용에 의해 일차 정화된 하수는 다시 수로를 통해 논으로 연결된다. 일정한 간격으로 연못 바닥의 침전물을 청소함으로써 연못의 정화지 기능이 유지된다. 수로의 바닥은 잡초와 이끼로 형성되어 있으므로 수로에서 하수는 이차적으로 정화된다. 논에서 요구되는 양 이상의 물은 그 앞의 감천(甘川)으로 방류된다. 이렇게 방류되는 물은 하천을 오염시키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정화된 상태이다. 연못의 전면(동측)으로 연결된 수로는 마을 외부에 위치한 저수지와 연결된다. 연못의 수위에 따라 이 수로로 저수지의 물이 유입되기도 하고 연못의 물이 유출되기도 한다. 따라서 연못은 마을 외부에 있는 저수지의 물이 마을로 도달하여 마을 전면의 논에 물이 차는 지표이다. 원터마을에서는 논농사 이외에 이모작으로 양파와 마늘 등의 작물을 논에 재배하고 있는데 5월말까지는 이 밭작물을 재배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밭작물은 수분이 많을 경우 재배가 곤란하며, 반대로 논농사에는 많은 물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일년을 주기로 10월 중순부터 5월말까지는 논에 물을 차단하고 6월부터는 물을 채워야 한다. 이러한 주기에 따라서 저수지의 방류가 조절되고 연못의 수량도 변화하게 된다. 전체 마을공간의 초점이 되는 곳에 배치된 연못은 이같이 마을에서 물이 순환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여느 대상처럼, 전통마을도 보는 관점에 따라 보여지는 부분이 다르다. 우리가 오늘의 관점 또는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전통마을을 보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전통과 현실에 적합한 새로운 계획원리의 근거들을 암시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원터마을은 바로 이런 시각에서 살펴볼 만한 좋은 대상이라고 생각된다. 단편적으로나마 원터마을에서 파악한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방법과 구성원리는 현대적 주거공간 계획방법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