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주거 근대화의 문제와 앞으로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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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촌의 모습에 대해 아름답다거나 평온해 보인다는 말은 흔히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경우는 드물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농촌은 하나의 경치일 뿐 삶의 장소로 인식되지 않는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주요한 목표로 상정되어 무모할 정도의 행정력을 바탕으로 추진된 농촌 환경개선사업은 바로 이러한 외부적 접근이었으며, 위로부터 강제된 변화였다. 이제까지 농촌주거 근대화라고 하면 대개 관주도의 환경개선사업을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주민들에 의한 자발적인 변화도 많은 부분 이것이 영향을 받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농촌주거의 근대화가 노정하여 온 문제는 농촌주거를 둘러싼 구조적 모순을 총체적 시각에서 파악하고 개혁하려는 내적 욕구로부터 출발하지 못하였다는 데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글에서는 건축을 포함한 관련 분야의 관심있는 전문가들로부터 적지않게 지적되어 온 70년대 농촌환경개선사업의 모순과 문제들을 상세히 거론하기보다, 농촌마을의 현지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최근의 현실을 바탕으로 농촌주거의 바람직한 개선방향을 모색하는 데 있어 요청되는 과제를 제기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한다.

사진1. 마을회관

국외자적 접근의 한계 극복

인간의 생활에 맞물려있는 공간으로 이루어진 주거를 관념적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어려울뿐더러 위험스런 일이다. 주거에서 설비가 중시되는 부엌이나 화장실 등의 공간을 기술적 공간이라고도 부르는데 일반적 관점으로 접할 수 있는 부분은 이러한 기술적 공간 자체에 한정되며 「공간의 구성」은 주택이 속하는 장소와 거주자의 개인적 사회적 성격에 따라 특수하게 규정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농촌주거의 근대화작업을 돌이켜볼 때, 마을의 하부구조를 일부 정비하고 새로운 건축재료의 도입을 통하여 주거환경을 어느 정도 위생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나, 주거생활이 움직여나가는 논리와 질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채 농촌주택표준설계도라는 일련의 주거모델을 설정하여 성급히 그것도 전국적으로 이입시키려 했다는 점에 커다란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막연하고도 일반적인 주거개념은 전문가들이 국외자로 남아있을 때 가지는 한계이며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사용자의 현실적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요구들이 표출되었다해도 그것이 농촌과 농민을 얽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지 못하고 받아들여진다면 오히려 잘못된 인식을 초래할 뿐이다. 따라서 요구를 포착하고 사회, 경제, 문화적 맥락에서 그것을 해석하여 주거의 변화방향을 모색한는 것이 건축전문가들의 책무로 생각되며, 이를 위해서 농촌사회 전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거주자의 요구는 주거공간 또는 공간이용패턴의 자발적 변화를 통하여 뚜렷하게 표출된다. 공간이 사용자에 의해 변화되었거나 공간은 그대로 존속되지만 그것의 이용이 달라졌다면 거기에는 변화를 야기하는 원인이 있을 것이고 특히 변화의 양상이 집단적으로 나타날 때 그러한 변화의 원인은 주거를 변화시키는 힘으로서 보다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농촌주거를 조사해보면 공간이 분화되는 현상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주거공간 근대화의 주요한 측면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새로 지어지는 집들은 오히려 덜 분화된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이는 변화의 방향성 또는 힘들이 주거건축 계획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농촌주거에 본질적 발전이 없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한 힘들이 결국 새로운 농촌주거를 만들어가는 내적 동인(動因)이 될 것이므로 현장조사를 통하여 그것들을 알아내고 이해하는 것이 농촌주거의 변화방향을 예견하는 데 우선적인 과제로 생각된다. 근래에 몇몇 대학의 연구실이 진행하고 있는 실측조사는 이러한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위와 같은 논점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으며 그 이용도 활발하지 못한 공동공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거의 모든 마을에 공동공간으로 마련된 마을회관은 대개 회의실과 온돌방으로 이루어진 단층건물인데 주로 남자어른들의 공간으로 이용된다. 반면 여자들과 아이들의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오랫동안 여자들의 사교공간 역할을 해온 빨래터는 수도와 세탁기의 보급으로 사라져가고 그것을 대신해주는 공간은 아직 마련되지 못하였으며, 학생들은 집에서 자기방을 갖기 힘든 실정이므로 별도의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요구를 고려할 때, 마을회관을 이층으로 하여 아래층은 전체 회의공간 및 남자들의 공간으로 하고 이층은 아이들의 공동공부방과 여자들의 공간으로 한다면 주부들이 자녀의 학습도 돌볼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공동공간이 활성화된다면 노동력의 여건상 비록 충분치 못한 여가시간이지만 유용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며, 마을의 중심적 위치에 자리잡은 마을회관이 자물쇠가 채워져서 방치되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사진1)

이는 하나의 대안에 불과하지만, 공동시설에 대한 공통적인 요구를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건물계획을 마련하는 것은 마을이 지녔던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새롭게 회복하는 데 필요한 과제로 생각된다.

사회와 거주자로부터 유리되지 않은 건조환경(建造環境)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며 농촌주거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농촌주거 근대화 과정에서는 어떠하였는가? 자기자본으로는 새집을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표준설계도에 따를 경우만 융자의 혜택과 허가상의 편의를 제공해 줌으로써 자신의 집에 자기의사조차 반영할 수 없었으며, 이것은 주생활에 있어 불만의 주요한 이유가 되어왔다. 예로서, 1987년 6월 조사한 경기도 양평군 용무면 삼성 2리의 경우 표준설계도대로 지은 주택보다 주민에 의해 설계 변경된 주택의 거주자가 공간이용의 불편을 덜 느끼고 있다는 점은 유의할 만하다.

앞으로 표준설계도는 융자 등의 혜택과 연결되어 경직되게 지켜져야하는 규제가 아니라 안내의 역활을 하도록, 주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마련되어 거주자의 의사에 따라 자유로이 선택되고 변경될 수 있어야 하겠다.

  농촌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부족한 관계자들이 농촌건축을 계획하는 데 있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주거 및 공동공간의 계획에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2. 달라진 마을의 모습(촬영; 建築知識+미자와)

삶의 논리 · 질서의 존중

농촌주거의 근대화과정에서 큰 비중을 둔 것은 주택과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마을의 외관에 대한 문제였다. 이에 따라 농촌에서 흔히「서구식」이라는 말로 통하는 주거형태가 권장되어 왔다. 주지하다시피 관에서는 농촌개발의 모델로 서구라파의 예를 들곤 하였는데 아마도 우리의 농촌이 겉보기라도 그런 외국의 모양새를 닮아가길 바라왔던 것 같다.(사진2)

여기에는 농촌 또는 농촌주거의 문제가 서구화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는 단순하고도 왜곡된 인식이 깔려있다. 또한, 농촌 문제가 심각하게 된 것은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적 개발과정에서 형성된 농촌에 불리한 구조적 조건에 기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원인을 구조외적 문제로 호도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결과로 어디서 본듯하면서도 꼭 그것은 아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에게는 생소한 마을의 경관을 고속도로변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지붕만 보더라도 지붕면이 전면에 오는 우리의 일반적 전통주거와는 반대로 박공면이 정면을 이루고 있다. 아무도 거기에서 그 이전에 있었을 마을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며, 과거의 농가와 연결되는 무엇을 느끼지 못한다.

농민들은 사실 그런 형태를 환영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희한한 지붕형태도 문제겠지만 더욱이 간이 이층처럼 되어있는 지붕공간이 쓸모없기 때문이다. 생소한 경관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실용성도 없는 주거형태는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는 겉모양에 집착함으로써 주거가 수용해야 할 삶의 논리와 질서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거주자들의 일상생활에 직접 관계되는 것이므로 더욱 문제시된다. 생활의 편의성이 일차적으로 확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주거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재래농가와 개량주택을 부엌의 위치로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전통적으로 집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족구성원은 주부이며 주부의 활동공간 주로 부엌이다. 재래농가에서 부엌은 외부인과 직접 맞닥뜨리는 것을 피하면서도 문간과 앞마당이 시각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담도 허술할뿐더러 도시에서와 같이 대문을 꽉꽉 잠그는 일이 없는 농촌에서는 외부인의 출입과 아이들의 활동이 부엌에 있는 주부에 의해 자연스레 감지되고 통제될 수 있었다.

반면, 개량주택은 대개 겹집형의 집중적(compact) 평면구성을 가지며 부엌은 일반적으로 앞마당에서 볼 때 뒷편에 위치한다. 이런 공간배열에서 재래농가에서와 같은 질서가 유지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마을에서 담을 높이 두르고 대문을 잠궈놓는 배타적인 표현이 금기시되는 문화적 맥락은 변함이 없는데 부엌만 뒤쪽으로 보낸 개량주택에서 불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며 앞서 예를 든 삼성 2리의 경우 앞마당이 잘 이용되지 않고 대문이 폐쇄되며 대신 부엌 쪽의 뒷마당이 활발히 사용되고 출입문도 따라서 뒤쪽(부엌쪽)으로 나기도 하는 등 주생활의 질서가 교란되는 현상을 보인다. 심지어 부엌이 창고로 바뀌고 앞마당 쪽에 부엌공간을 다시 증축하는 경우도 보인다.(사진3, 사진4, 그림1)

생활의 질서는 단위 주거공간에서 만이 아니라 마을에서도 존재하며 이것은 마을배치의 질서로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마을의 입구부분에서 남자어른들이 주로 모이는 정자가 위치하고, 보다 뒷편에는 사당이 있고 뒷산 기슭에 묘지가 있다. 정자에 모여앉은 사람들에 의해 마을로 출입하는 외부인들이 자연스레 감시되고, 마을 뒷편은 정신적 공간으로 인지된다.(사진5, 사진6, 사진7)

이제 거의 모든 마을에 마을회관이 들어섰고 마을창고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가게, 이발소, 교회, 학교 등등의 생활편익시설, 공동시설, 지역시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설들을 배치하는데 있어 마을의 공간구조, 마을사람들의 공간인식, 그리고 사람들의 행위와 연결되도록 적당한 위치를 찾고 있는지 검토되어야 하겠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마을의 공간이 효율적으로 조직될 수 없을뿐더러 마을사람들의 공간인지에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생활의 기본적 측면은 도시나 농촌이나 다를 바가 없겠지만 그것의 표출방식은 일정하지 않다. 주거계획에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생활의 행위이며 또한 그것의 시간적 흐름이다. 농촌생활의 구체적 모습과 행위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단위주거와 공동시설의 공간적 문제와 연결시켜 바람직하게 유도하는 일은 또 하나의 주요한 과제이다. 

 

 

사진3. 방치된 안마당

 

사진4. 덧붙여진 부엌

 

삶의 논리랄지 질서는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경제 문화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으며 끊임없이 변모하고 재편되어 나간다. 생활의 변화에 따라 주거공간도 변화되거나 공간의 이용방식이 변화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마당, 특히 바깥마당은 작업공간, 다시 말해 탈곡하고 벼를 말리는 등의 농작업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농업인구의 유출로 인한 노동력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도입되는 콤바인 등의 농기계가 보급되어 경지에서 수확 탈곡의 작업이 행해짐에 따라 마당이 가졌던 작업공간으로서의 비중은 상당히 감소되었다. 따라서 바깥마당이 대지 안으로 편입되는 현상이 보이고, 마당의 면적도 이전과 같이 넓을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에 새로이 대두된 농기계를 보관해 둘 수납공간이 필요하게 되어 부속사공간의 요구가 증가되었다. 결과적으로, 대지면적이 줄어들어도 될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는 농업방식의 변화가 주거공간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예인데, 그 밖의 많은 요인들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거와 관련을 맺고 있는 제반 여건들을 파악하는 일이 주거의 변화방향을 제시하는데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농촌주거의 근대화는 한마디로 주거와 관련되는 제반여건의 변화를 파악하고 진보적인 방향성을 정립하여 그것을 주거공간 및 거주환경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1. 사용된 표준설계도(1978년형)

 

총체적 접근

농촌주거의 근대화작업은 마을 단위로 추진되어왔다. 그럼으로써 공연한 경쟁심만 부추기고 주택개량의 실적이 마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곤 하였다. 마을과 마을, 농촌과 도시는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인데도 하나의 마을만을 대상을 한정한 것은 농촌주거의 근대화 작업이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말해 주며, 농촌 문제의 뿌리가 농촌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은폐하고 농촌사회의 연대를 차단하려는 관료주의적 의도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생활편익시설이나 지역시설은 마을 단위가 아니라 광역적으로 체계적인 계획이 되어야 하며, 인근 도시와 마을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계획되어야만 그 공간적 분포가 균등하게 되고 이용의 효율성이 증대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생활환경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적 공간이 개인의 주거보다 우선적으로 확충되고 근대화되어야 한다.

여기서 국토계획 차원의 농촌계획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이미 많은 시행착오와 발전을 이루고 있는 도시계획에서의 방법론들이 참고적으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주거에 생활부분 만이 아니라 생산부분이 있다는 것은 농촌주거가 도시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생산공간은 농민들의 소득과 직결되는 부분으로 생활공간 못지 않게 절실한 것인데도 지금까지의 농촌주거 근대화과정에서는 대체로 이에 대한 고려가 결핍되었었다. 표준설계도를 보더라도 부속사에 대한 내용은 없다. 따라서 앞으로 주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생산공간의 계획, 경제적인 건축재료와 시공법의 개발이라고 생각한다.

도입되는 농기계의 종류, 사육가축, 수납할 곡물의 양과 같은 기준 따라 적정한 부속사공간이 계획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농촌의 주거환경이 열악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생산공간과 생활공간이 혼재하기 때문이므로, 될 수 있는대로 생산공간을 생활공간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집약시키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업공간의 집단화, 공동축사, 공공창고 등이 제안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제시되는 제안들은 소박한 미래주의적 발상에 불과한 것으로 실제적인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농업이 본격적인 자본주의화 과정을 겪으면서 농민층의 분해가 급격하게 진행되어 왔으며 농촌도 분화되어 이미 농민이나 농촌이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게 되었다. 특수작물의 재배에 비중을 두고 도시적 생활방식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도시근교의 농촌의 성격이 다양하며, 한 마을에 거주하는 농민도 부농에서 빈농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농업의 규모와 방식도 일정할 수가 없으며 이런 상태에서 공통분모를 찾아 공동화, 집단화한다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주민들이 집단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현실적으로 현재와 같은 생산방식 아래서는 유사한 경제적 조건에 있는 농민들이 마을 내에서 부분적으로 생산공간을 집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나, 이것도 장기적으로 농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농촌을 떠나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현실은 어떠한 투자도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주거의 근대화는 농업에 대한 장기적인 희망이 없을 때 이루어질 수 없다. 집만 잘 지어놓았다고 농촌에서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주거문제는 앞에서 누차 언급한 것처럼 경제문제, 사회문화적 여건과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으며 이러한 제반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근대화도 추진력을 제대로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피폐화되어가는 농촌을 희생시키려는 국가적 정책이 농촌주거 근대화의 전제조건이며 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사진5. 마을배치도

맺는 글

농촌은 우리의 과거를 그나마 지니고 있는 곳이다. 또한 과거가 쉽게 잊혀지지 않길 바라는 것은 사람들이 가진 보편적인 감정이다. 농촌은 급격히 불어난 도시민들에게 회고적인 정서적 기능을 해왔으며 어떤 사람들은 초가집까지도 보존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감상적이고 복고주의적인 보존논리는 삶의 역동적 현실에 역행하는 것이므로 지양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생활의 질서를 단순한 기능주의적 발상으로 부정하는 것이 근대화인양 여기는 식민적 논리 또한 경계되어야 한다. 기존의 주거를 개선시켜 바람직한 거주환경을 창출해 내는 작업에 있어서 전통성의 본질을 인식하고 그것을 새로운 기술로 재해석하려는 태도가 견지되어야 할 것이다.

농촌은 많이 바뀌었다. 일관성 없고 잘못된 정책과 전문가들의 상대적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희생에 의해 농촌사회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우리는 여기서 농민의 창조적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이 올바른 정책적 지원과 전문가들의 적극적 기여를 바탕으로 할 때 주거문제에 있어서도 커다란 진보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사진6. 정자

 

사진7. 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