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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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 도시건축을 만들기 위해 설계자가 고려해야 할 사항들 -

김기호, 양우현, 김도년, 한필원 / '공간' 1990년 5월호

* 문장 중의 사진은 1999년 3월에 촬영하여 추가된 것임.

글머리에

1980년대를 뒤로 보내면서 1990년대를 앞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금, 우리 서울의 도심에 있어서 사무실/상업건물들의 특징을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건물의 설계를 공간구성 측면에서 볼 때, 건물이 주로 내부공간 위주로 설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건물의 외부공간을 설계할 때 내부공간을 설계하는 데 투입하는 정도의 대등한 건축가의 노력과 에너지가 투입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건물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조화 측면에서 커다란 문제가 발생되고 있고,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건물의 외부공간과 궁극적으로는 내부공간의 질의 저하를 초래하게 되었다.

둘째는 건물의 1차적인 이용자 이외의 일반대중에 대해서는 공간을 배타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건물로의 보행 접근성을 저하시키게 되고 또한 건물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에서 공적인 공간(public space)을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데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세째로는 건물 내부공간에 대한 설계대상을 좀더 작게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무실로 임대되는 사무실 공간, 이른바 기준층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계노력을 투입하고 있는 반면, 사무실로 임대되지 않는 로비공간과 부분적으로 소매용도(retail use)로 할애되고 있는, 이른바 저층부분(lower levels)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볼 때 충분한 설계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다고 하겠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건물설계에 있어서 기준층의 설계에 비해서 저층부분의 설계를 소홀하게 다루게 만들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아니 좀더 나아가서 1970년대 이후 서울 도심의 사무실/상업건물에 대해 위와 같은 특징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항상 얘기해오던 건축관계법제도와 그 운영의 문제점, 설계비의 낮은 수준과 설계기간이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는 설계여건의 문제, 클라이언트의 의식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사실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설계자들이 여기서 언급된 구조적인 장애요소를 너무 오랜시간 동안 일종의 피난처로 생각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좀더 나은 설계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설계를 구조적인 장애요소들의 틀 안에서 타성적으로 처리하려고 하는 경향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에 우리의 도심환경에도 혁명적인 상황이 새롭게 발생하고 있다. 즉 시민들의 자동차 보유 대수가 급증함으로 말미암아 도심환경의 어느 거리, 어느 대지이건 자동차로 범람하고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서울의 도시환경이 당면한 중요한 이슈에는 도시환경에서 자동차와 주차의 문제를 어떻게 지혜롭게 수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와 동시에, 이러한 도시환경에서 자동차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공적인 보행공간(public pedestrian space)을 도시공간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확보하느냐 하는 문제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급격히 변화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 건축 분야가 담당해야 할 임무는, 앞서 언급한 구조적인 장애요소들의 제거 여부와 별개로, 독립적으로, 도심건물에 있어서 설계대상을 확대해서 설계하는 일과, 도심건물에 공적 공간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이 공간으로의 보행 접근성을 높이는 일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생각해볼 때, 1990년대의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도시건축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괄목할 정도로 발생하기 시작할 것 같고, 이러한 좋은 도시건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좀더 새로운 설계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내용을 좀더 설득력있게 표현하기 위해서, 대한주택공사가 개발한 을지로 2가 프로젝트를 사례로 보여주었다. 여기서 우리가 을지로 2가 프로젝트를 선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유에서이다.

 첫째는, 이 프로젝트가 서울에서 1980년대에 지어진 도심프로젝트 중에서 규모로 보나 프로젝트의 성격으로 보나 가장 대표적인 랜드마크(landmark)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 프로젝트가 공공기관에 의해서 개발되었기 때문에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서 비교적 공공성이 많이 강조되었고, 또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개발과정이 상당히 개방적이었던 프로젝트이다. 세째로는, 위에서 언급한 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에 지어진 다른 프로젝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구조적인 장애물에 기인한 여러 가지 일반적인 문제들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1. 도시건축에 대하여

우리의 도시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많은 건축행위들을 이해하고 바람직한 건축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있는 도시공간 내에 자리한다는 인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나의 건축물과 그것이 위치하고 있는 도시환경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영향관계에 있다는 사실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지난 1980년대에 우리나라의 도시에서 끊임없이 세워지고 나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건물들을 보면서 도시환경에서 우리가 좋은 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지, 또 무엇이 좋은 건축인지, 좋은 건축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일련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설계의 관점에서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다.

기존의 도시구조에 건물이 세워질 때 도시의 상황은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에 여러 가지의 제한과 영향을 행사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건축에 영향을 미치는 도시구조의 여러 측면을 적절하게 반영하여 설계하면 건축물이 도시구조에 잘 부합되어 도시질서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설계현실을 볼 때, 민간 차원이나 공공 차원의 개발에 있어서 도시환경 안에 존재하게 될 건축물을 설계하는 과정에 도시구조를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건축전문잡지나 작품전시회에서 보여지는 건축작품의 표현에서 주변의 상황을 보여주는 도면을 통하여 건축물과 도시의 관계를 밝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시 말해서 건물 그 자체의 표현과 설명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상황을 반영하고 그것과 적절한 관련을 갖는 건축을 '도시건축'이라고 한다면, '도시 안에 존재하는 건축물은 많으나 도시건축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도시에 세워지는 바람직한 건축물은 우선 그 건축물 자체가 질적으로 높은 수준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 그것이 위치하는 도시의 맥락(context)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건축이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콘텍스트란 건축물이 속하게 되는 지구(地區)의 질서를 말하는 것으로 '옛 것과 새 것', 건물과 그 주변환경 사이의 상호관련성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앞서 말한 도시건축은 도시 콘텍스트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건축이며 우리가 도시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축이다. 그러면 이러한 도시건축이 갖추어야 하는 조건은 무엇이며, 그것의 설계를 위해서는 어떠한 점들이 고려되어야 하고 어떠한 설계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파악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개발 프로젝트이었던 '을지로 2가 재개발'의 사례분석을 통하여 그 실제적인 측면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2. 도시건축의 공공성(公共性)

2-1 도시공간의 구성

도시공간이란 특정집단의 점유물이 아니며 도시에 거주하고 도시공간에서 활동하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도시공간은 공공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도시에는 개인 또는 특정집단을 위한 사적 공간(私的 空間) 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을 위한 공간과 시설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하겠다. 여기서 공공을 위한 공간을 '공적 공간(公的 空間)'이라고 정의하기로 한다면, 공적 공간은 공간 사용에 있어서 일반대중이 계층적, 시간적 제한을 받지 않고 사회적 규범과 법규를 따르면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건물 내부 및 외부의 공간을 말한다. 공적 공간은 다양한 공적 활동을 수용함으로써 도시공간에 활력을 주는 도시환경의 중요한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공적 공간은 건물 저층부에 위치하는 로비와 같이 건물에 속하는 내부공간, 건물 외부의 오픈스페이스, 주변의 가로 등과 같은 외부공간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공적 공간을 올바르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건물 내부의 공적 공간 설계와 동시에 외부공간에 대해서도 좀더 적극적인 설계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 경우에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함께 공공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2-2 도시공간이 공공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

하나의 작품이 도시환경에서 좋은 건축물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건이 있겠으나, 우선 그 건물이 위치하는  도시에 공적 공간을 어떻게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제공된 공간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에 따라 판단될 수 있겠다. 그 이유는 도시에 세워지는 건물이란 도시의 공간을 사용하므로 그 도시에 공적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기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시의 공간활용이 윤리성(倫理性)을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그러한 윤리성이 존재하고 중요시되어야만 도시의 질서와 공공성이 유지될 수 있다. 만일 도시가 사적인 공간들로만 구성된다면 도시공간에서 일어나는 활동들은 제한될 수 밖에 없으며 많은 사람들은 도시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자기가 거주하는 도시공간으로부터 소외될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가 사람들에게 삶의 장소로 인식되고 자신이 '소속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활발한 일상의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공적 공간이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실제적인 것이다. 건축의 설계가 건물내부의 사적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고 내부의 공적 공간과 외부의 도시공간까지 연계되어 수행될 때 그러한 공적 공간은 일반대중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되어 사람들은 친근감을 갖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적 공간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활동이 일어날 것이며 그러한 공적 공간에 관련되는 건물 또한 활발하게 이용됨으로써 건물주에게도 실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3. 도시건축을 이루는 요소와 그것들의 관계

앞에서 도시건축과 공공성에 관하여 기술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도시건축이 공공성을 가지려면 어떠한 요소들을 고려하여야 하고 그러한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관계를 가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3-1 건물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

우리가 경험하는 건축물은 건물 그 자체의 형태와 함께 건물이 담고 있는 내부공간과 그 건물이 형성하고 관계하는 외부공간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은 사용자에 의해서 공간적인 상호관련성이 설정되고 이해되며, 사용자가 외부공간과 건물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축이 성립되고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하겠다. 특히 도시에 세워지는 건축은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심에 한 건물이 건립되어 있을 경우 그 건물은 특정한 외부공간과 관계를 가지고, 사용자는 건물 그리고 그것과 함께 마련된 외부공간을 동시에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건축물을 이해하는 것 또한 건물 자체의 형태와 상징성 뿐 아니라 건물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함께 인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내부공간이든 외부공간이든 공간이 양적(量的)으로 확보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외부공간을 어느 정도 할당하여 놓고 공적 공간을 대중에게 제공하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용자가 외부공간을 그것과 관계되는 건물 내부의 공적 공간과 연결시키지 못할 때 그 건물과 외부공간은 공공성을 갖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건물의 내부공간 중 공적공간이 자연스럽게 외부공간과 연관된다면 사용자는 그 건물과 외부공간을 공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도시건축이란 이와 같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관계가 올바르게 설정되어 있어서 이용자들이 그것을 연결지어 인식하고 활용할 수 있는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도시건축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건물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관련지어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3-2 길과 사람

도시구조의 골격을 이루는 가로체계는 사람과 차량의 통행을 담고 있으므로 그 가로체계에 의해 건물의 사용방법이 정해진다. 또한 도시에 있는 건축은 이미 형성되어 활용되고 있는 길에서 접근되고 길의 사용자 중 일부가 건물과 외부공간을 이용한다. 이런 의미로 볼 때 기존의 가로체계는 건물과 외부공간에서 사람의 동선을 유발하는 중요한 도시적 조건이 되며 사용자가 건물과 외부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길에서 보행자의 흐름은 도시건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요소이다. 도시건축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로체계에서 특정하게 발생하고 있는 사람의 통행을 좀 더 효율적으로 수용하고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계하여 접근을 용이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가로체계가 그것의 특수한 상황에 따라 특수한 형태를 가진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보편적인 도시건축의 해결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번잡한 도심에서 가로의 모퉁이에 들어서는 건축물은 그 가로체계의 특수성과 사람들 통행의 흐름으로 특징지워지고, 그러한 상황에 가장 적절한 설계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도시건축이란 도시의 콘텍스트에 따라 특수한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므로 도시건축으로 이루어지는 도시는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양상으로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풍부한 도시환경이 될 것이다.

3-3 활동과 장소

한 장소가 활동을 위한 공간이 되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활동이 그 장소의 성격을 규정하게 될 때 그 장소는 비로소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도시의 건물과 외부공간에도 이것을 적용시킬 수 있다. 즉 우리가 논하고 있는 공적 공간에 국한시켜 본다면 공적인 장소에서는 공적인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그 공간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시공간 내에서 일어나는 활동의 목적과 형태가 설계적 차원에서 어떻게 고려되어야 하는가 살펴보아야 한다. 공간의 이용에 대한 예측이 없이 건물에 대한 설계의 부수물로 생기는 빈공간이나 막연하게 면적이 할당된 오픈스페이스는 적절한 활동을 유도하거나 수용하기가 어렵다.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보이는 건물 저층부 공간과 외부공간이 별 이용없이 방치되어 있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어떠한 활동이 수용되고 활발하게 이용되지 못한다면 도시의 오픈 스페이스는 귀중한 도시공간의 낭비일 뿐이다. 그러므로 제 구실을 하는 공적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활동을 고려하여 건물내부의 사적 공간에 대한 설계를 하듯이 공적 공간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설계가 되어야 한다.

4. '을지로 재개발'을 통하여 본 도시건축의 몇 가지 측면들

대규모의 공적 공간을 시민휴식공간과 전시공간으로 도시에 제공한 을지로 재개발은 공적 공간의 필요성과 그것이 도시에 기여하는 효과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실제적인 활용에 있어서 그러한 좋은 의도와는 달리 그리 만족스럽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는 우리에게 공간의 규모와   면적, 즉 양적인 것만이 공적 공간 활용의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열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반대중에게 주어진 공간의 크고 작음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의 질이 확보되어야만 도시의 좋은 공적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을지로 재개발에서 제공된 공적 공간의 실태와 그 문제점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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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배치도

세 동의 건물로 이루어지는 외부공간은 복잡하게 분할되고, 빈번한 레벨(level)차로 인하여 전체적인 구성에서 주공간의 부재라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4-1 건물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관계

을지로 재개발은 3개의 주변도로에서 길, 건물 그리고 옥외광장으로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접근방식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전체적인 배치계획이 이루어져 있다. 을지로 재개발을 이루는 건물군은 1동 한국화약사옥, 2동 쁘렝땅 백화점, 3동 중소기업은행 본점 등 3개의 동(棟)인데, 이 건물군은 한쪽이 개방된 중정형의 형태로 배치되어서 개개의 건물에 대한 외부에서의 시각적 접근효과는 크지만 장교마당이라고 이름붙여진 내부중정의 존재여부를 보행자들이 인지(認知)하기는 쉽지 않다. 또 3개의 건물이 지하층에서 서로 통해져 있고 대중 교통 수단인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어서 지하층부분이 공적 공간으로 상당히 중요하게 처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상대적으로 지상에 마련된 외부공간을 기능적으로 약화시키고 내부 중정의 아이덴티티(identity)도 약화시키는 결과가 되어 보행인들을 지상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마치 높은 장벽처럼 서있는 3개 건물의 입면은 비록 몇 가지의 설계요소가 그 거대한 벽체의 중압감을 다소 줄여 준다고 하더라도 보행자 및 이용자들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고 있지 못하다.

사선제한이라는 법규적 제한을 단지 건축선의 후퇴만으로 처리하여 건축물들을 배열시킴으로써 형성된 거대한 벽체들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미기후의 영향으로 삼일로변 가로를 보행자들이 회피하는 현상을 야기시켰다. 건축선의 후퇴와 장교마당의 강조로 말미암아 상대적으로 보행자통행을 위한 가로가 넓어졌지만건물 설계의 결과로 형성된 이 넓은 가로는 단지 내에서 보차를 분리하겠다는 설계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것 역시 넓은 가로를 설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건물 매스의 처리에 있어서 보행자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건물의 저층부에서 공간감을 상실하게 된 주된 원인이며, 건물군이 형성하고 있는 외부공간으로의 접근이나 건물 내부로의 진입부분이 가져야하는 개방적이고 상징적인 성격을 잃게 하여 공간의 이용에 대한 동기를 유발시키지 못하고 있다.
eulji-a.jpg (13601 bytes) 1,2동사이의 연결부분을   3 ·1로변에서 본 모습 eulji-b.jpg (10976 bytes) 1,2동 사이 연결부분 내부에서 본 장교마당

2동과 3동 사이의 도시계획도로는 지하차도로 처리하는 등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단지를 분리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또 다른 주차도로의 존재는 두 개의 단지를 억지로 연결시켜보려는 데 따른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소극적인 주차해결 및 보차 분리는 공적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많은 부분을 주차장소로 쓰이게 하는 현상을 가져왔다. 여기서 나타난 도로의 처리에 따른 문제점을 볼 때, 기존의 도시계획도로를 인정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결하려는 방법이 필요함을 시사받게 된다. 즉 길을 외부공간의 통합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생각하는 일반적인 선입견에서 탈피하여 길을 적극적인 설계요소로 이용하려는 노력이 아쉽다고 하겠다.

eulji-c.jpg (12818 bytes)  지하 도시계획도로 입구에서 본 장교마당

4-2 공적 공간의 구성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공적 공간은 내부의 공적 공간과 외부 공적 공간으로 이루어지는데, 을지로 재개발의 경우 크게는 세 건물의 저층부와 아트리움 그리고 외부공간인 중정으로 공적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세 건물 저층부의 공적 공간은 로비와 지하층의 공적 공간 그리고 지하철과의 연결을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외부중정은 장교마당과 3개의 선큰 가든(sunken garden) 그리고 가로와 녹지에 연결된다.

eulji-d.jpg (12475 bytes)  지하철역에서 연결되는 선큰부분

을지로 재개발 지역에서 내부와 외부의 방대한 공간을 공적 공간으로 할애하였으나 그것을 너무 작게 분할하여 공간이 복잡하게 되었고, 빈번하게 레벨(level)차를 두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성의 측면에서는 주공간(主空間)의 부재(不在)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 장교마당 내의 선큰 가든들은 단지 '뚫려있는 형태'로 형성되어 지하층과의 연결통로로만 쓰임으로써 각각의 의미와 목적이 상실되어 있는 형편이다.

eulji-e.jpg (14249 bytes)   외부공간의 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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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단면도

장교마당 내의 선큰 가든들은 단지 '뚫려있는 형태'로 형성되어 지하층과의 연결통로로만 쓰임으로써 각각의 의미와 목적이 상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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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단면도

세 건물의 내부공간에서부터 외부공간(장교마당)으로 보행자의 이동을 유도할만한 동기와 목적이 제공되어 있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장교마당의 애매한 성격 때문에 이용자들은 공간활용의 목적과 동기를 제공받고 있지 못하다. 또한 중소기업은행의 경우 외부공간과의 연결이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을지로 재개발의 설계에서는 세 건물의 내부공간에서부터 장교마당까지의 연결 즉 내부에서 외부로의 이동을 유도할만한 동기와 목적이 강하게 제공되어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공간의 성격 및 특성을 올바르게 설정하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이용자가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나 이용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려는 고려가 되지 않은 막연한 공간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라고 하는 공적 공간의 설계목적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사용자가 없고 아무런 활동이 일어나지 않는 공간은 설계자가 공간의 목적에 대한 계획이 없이 막연하게 나열한 공간과 다를 바가 없다. 또한 공간의 구체적인 활용에 대한 고려없이 외부공간에 마련된 스트리트 퍼니춰(street furniture)들은 공간의 장식물일 뿐 실제로 공적 공간을 이용하는데 있어서 관련성을 갖는 조형요소가 되고 있지 못하다.

eulji-f.jpg (13123 bytes)  장교마당의 조형물

4-3 활용되는 공적 공간의 부재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을지로 재개발의 경우에서 처럼 양적으로 많은 공적 공간을 제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활용되는 공적 공간이 작은 것은 설계자가 공적 공간의 성격을 제안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일어날 활동을 예측하지 못하였으며 또 사용자들의 공적 활동을 유도할 수 있는 설계요소를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적 공간에서 활동의 예측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로서 그것은 공적 공간의 활용을 유도하고 결정하며 그로 인해 콘텍스트와 관련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건축으로서의 의의를 가지는 설계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면적만을 할애하여 이루어지는 공적 공간이 아니라 활동이 있고 주어진 상황과 관련을 가지고 있는 공적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설계의 차원에서 미리 그 구체적인 활용이 예측되고 유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과정에서 공적인 외부공간이 건물과 대등하게 고려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5. 결론

1990년대는 우리의 도시에서 자동차교통으로 말미암아 도시환경의 질이 악화됨으로써, 도시환경의 질을 높이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상대적으로 더 돋보이게 될 것이다. 도시환경에서 자동차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공적 보행공간을 도시공간에서 어떻게 확보하느냐하는 문제가 커다랗게 대두될 것이다. 또한 1990년대는 우리의 도시에서 시민들 사이에 좋은 도시건축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괄목할 정도로 발생하기 시작할 것 같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1990년대와 더 나아가서 2000년대의 우리 도시환경에 위치하는 건축물들은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건축물과는 여러 측면에서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지어졌던 여러 건축물들의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건축분야의 이른바 구조적인 장애요소가 건축가들의 자유로운 창의적인 활동을 커다랗게 위축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사례로 사용한 을지로 2가 프로젝트는 1980년대 서울 도심에서 개발된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 비교적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 설계의 노력을 많이 한 프로젝트이다. 또한 공공기관에 의해서 개발된 프로젝트이므로 개발과정과 설계과정이 다른 민간부문이 개발한 프로젝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개방된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도, 그 시대에 지어진 다른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전술한 건축분야의 구조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사례를 분석할 때 제기된 설계측면의 문제들은 많은 부분이 그러한 구조적인 장애요소에 의해서 발생된 문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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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건물, 옥외공간, 차량

옥외공간은 대부분 차량으로 점유되고 있어서 외부공간으로의 접근이나 건물내부로의 진입부분이 가져야 하는 개방적이고 상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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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단절된 외부공간들

양적으로는 많은 공적 공간을 제공하였음이도 불구하고 실제로 활용되는 공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199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건축가들이 더이상 그들의 설계결과에 대한 책임을 현행 건축분야의 구조적 문제로 돌리기 힘든 시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건축가들이 그들의 설계프로젝트의 내용에 좀더 책임의식을 갖고 접근하기 시작할 때 그들의 설계활동을 위축시켜왔던 구조적인 문제들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고 생각한다.

앞으로 도시환경 속에 지어지는 건축물이 좀더 공공성을 가짐으로써 도시건축으로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축의 설계대상이 확대되어져야 하고 또한 방법에 있어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픽 : 조정구>